사제지간이 그림벗으로...한 선생님앞에 제자들이 모였다

입력 2020.08.01 17:00

현동 김광옥 화백(왼쪽에서 여섯번째)이 제자들과 함께 했다. /잠월미술관 제공
현동 김광옥 화백(왼쪽에서 여섯번째)이 제자들과 함께 했다. /잠월미술관 제공

◇제자들이 모였다

1989년 김광옥 미술교사가 광주예술고에 부임했다. 교사 3년차였다. 첫 부임지 서울 동원중에서 광주로 돌아왔다. 한국화가로 미술세계를 열고 있었던 그로서는 나름대로 인정받는 것이라 여겼다. 아침 6시30분이면 학교에 출근했다. 의욕이 넘치는 초년시절, 그는 아침부터 수업을 준비하고 그림을 그렸다. 학교와 산하(山下)가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캔버스를 메고 가는 야외스케치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는 이 학교에서 14년간 학생들과 호흡을 함께했다. 당시 한국화과에 출강하던 이들과는 ‘한솥전’을 만들어 함께 작품활동을 해왔다. 광주공고에서는 동아리를 만들어 지도했다. 그렇게 3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에게서 그림을 배웠던 제자 20여명이 그 못지않게 화단(畵壇)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7월 25일 전남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잠월미술관. 8월말 예정된 그의 정년퇴임 축하전시회를 제자들이 마련했다. 독일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를 포함하여 제자와 옛 동료이자 후배들도 작품을 보내왔다. 김 교사가 15점을 걸었다. 평생 화업(畵業)을 함께 일궈오고 있는 부인 임혜숙 교사, 제자들과 옛 동료들도 그림을 각기 출품했다. 25점이었다. 전시작은 모두 40점. 오는 9월 20일까지 전시는 이어진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나침반이자 이정표였습니다. 저희에겐 가장 큰 버팀목이었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도 우리는 닮아가려 노력했습니다.”

제자들을 대표해 조양희 화가가 헌사(獻辭)를 했다. 1989년 광주예술고 첫 제자이다. 조 화가는 “연구실에서 작업하시는 뒷모습을 보며 작가의 희망을 키우다 보니 어느덧 선생님과 함께 그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며 “선생님의 제자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홍익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모교인 광주예술고에 출강하고 있다. 이날 제자들은 “날이 좋은 어느 날,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스케치여행이나 가실까요”라고 제안, 그들은 사제(師弟)에서 예술의 길을 동행하는 화우(畵友)가 되었다.
강일호 작 '녹턴'.
강일호 작 '녹턴'.

강일호, 김광웅, 김병균, 김재만, 김지연, 김지훈, 명현철, 박문수, 서길종, 서수경, 설박, 송지호, 윤성필, 윤준영, 이두환, 이선복, 임권준, 정현경, 정희창, 조양희, 조중희, 최정아, 최진우, 함경락 등이 출품했다. 이 가운데 제자 서수경은 조선대 미대에서 졸업최고상(백악상)을 수상하고, 독일 베를린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독일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김지연도 경희대 한국화과를 졸업한 이후 영국 브라이튼대 대학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스승으로부터 배워

김 교사에게도 스승들이 있었다. 그의 사승(師承)을 짐작게 하는 그림이 있다. 그가 작년에 펴낸 ‘화중유시(畵中有詩)’ 시화첩에 보면 ‘비가 올 때면’이란 화제(畵題)가 달린 그림이 있다. 산중 저수지를 감싸는 나무들, 저수지 가운데서 노니는 오리들, 그 위로 쏟아지는 비, 저수지로 비치는 빛이 화폭에 담겨 있다. 바람이 빗줄기를 한 방향으로 밀어내는데, 마치 저수지 언덕에 서서 보는 듯하다. 그가 그려낸, 화폭 전면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다른 작품 ‘청우(聽雨)’는 세차게 내리는 산간 계곡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화폭 상단에서 사선으로 뿌려지는 빗줄기는 장관이다. 기자는 ‘아산 조방원’ 화첩을 보면서, 그 사선의 빗줄기가 ‘바로 여기서 나왔겠구나!’하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섬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먹으로 그려내는 기법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은 여백을 중시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여백에 사색과 관조, 선(禪)의 경지를 담아냈던 아산(雅山) 조방원(趙邦元·1926~2014)이었다. 아산은 남도의 한국화를 대표했던 최고 반열이었다.

김광옥 작 '비가 올 때면'.
김광옥 작 '비가 올 때면'.

어린 시절 김 교사에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듯하다. 고향 파출소 담벼락에 도둑 잡는 순경의 모습을 그렸더니, 혼낼 줄 알았던 아버지가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고향은 전남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바닷가 마을이다. 그런 아들을 어머니도 지켜보았다. 그가 고교졸업후 방황하자, 어머니는 이듬해인 1977년 광주에 있던 한 화가에게로 이끌어주었다. 그 다음해부터 두 해는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의 제자들로 결성된 연진회에서 한국화를 배웠다. 의재는 남도화단의 거목이었다. 이 때 계산 정찬홍 화백으로부터 많이 배웠다.

아산으로부터는 1980년부터였다. 아산은 “그림은 평생 그리는 것이니. 교사가 되어서 밥벌이는 하면서 그림을 그려라”고 조언했다. 그에 따라 늦깎이로 1983년 전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한국화를 가르치는 새로운 스승(목정 방의건)을 만나 배우면서도, 아산의 가르침을 계속 받았다. 아산은 “자연이 스승”이라고 했다. 당시 무등산 자락에서 살던 아산은 구체적으로 무등산을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예시했다. 묘사의 대상인 자연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자연과의 합일(自然合一)을 강조했다. 세 스승은 하나같이 자연합일이 중요함을 일깨웠다고 한다.

그가 ‘화중유시’에서 풀어놓은 산내리 풍경은 귀거래사(歸去來辭)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산내리에 있는 잠월미술관은 김 교사 부부가 세웠다. 그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 돌아 길 하나 있네. 나지막한 구릉 아래 한가로이 소떼 노니는 곳. 뒷집 기산 할매, 문장 장에 다녀오다 산기를 느껴 빈집에서 몸을 풀고 얻은 그 길. 딸내미 이름을 길에서 얻어 길님이라 지었다는 그 길. 꽃무릇 지천으로 피어나 서로 만나지 못함을 서러워하듯, 붉게 물들어 서 있는 그 길. 산골화가의 붓질 아래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 피어나는 그 길, 산내리 가는 길이 거기 있네.’

김광옥 작 '산내리 가는 길'.
김광옥 작 '산내리 가는 길'.

그가 그린 ‘산내리 가는 길’ 그림은 연푸른 풀색이 완연하다. 세 마리 두루미가 한가로이 노니는데, 산 아래 살짝 비치는 집은 나무들에 둘러싸여 포근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농촌과 산간, 바다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소박하고, 인정미가 넘친다. 따뜻한 시선으로 벽지 사람들과 풍경들을 펼쳐보여준다. 하루도 새벽과 아침, 낮과 해 질 녘, 밤으로 그려냈다. 한 해는 사계(四季)를 포함한다. 바다의 색들이 하얗고, 푸르고, 검다. 채색과 농담에 따라 변주된다. 자연과 그 자연에 기대어 사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그의 그림이 갖는 매력이자 특징이다. 남도에 흐르는 한국화의 맥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안빈낙도를 꿈꾸며

광주의 관문 광주송정역에서 불과 25㎞를 달리면 산내리 잠월미술관이다. 김 교사 부부는 2006년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에 미술관을 일구었다. 교직을 그만두고 작업(그림)만 하고 싶다는 소망에서부터, 농사도 지으면서 미술을 통해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다. 이것저것 끌어모으고, 또 모자라 빚도 짊어지고 터전을 지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초원을 누비는 호사도 누리고 있다는데, 미술관 주변에는 상추와 가지, 호박, 오이, 고구마, 쑥갓, 방울토마토, 감자, 옥수수 등이 무럭무럭 자란다.

전남대 미술교육과에서 선·후배로 만난 부부는 한국화를 배우며 야외스케치도 함께 떠나며 마음 설레던 대학시절을 보냈다. 둘은 재형저축 120만원이 전 재산이던 1988년 결혼했다. 대학졸업 이후 중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부인 임혜숙씨는 “가난했고 너무 힘들었다”며 “하지만 꿈과 희망이 넘쳤다”고 했다. 농촌으로 들어온 이들은 미술관을 시골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학교로 만들었다. 부부는 4년 동안 ‘청춘학당’을 열었다. 까막눈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할머니들이 이곳에서 글눈을 떴다. 할머니들은 그제야 가슴속에 묻어왔던 사연과 이야기들을 종이에 옮길 수 있었다. ‘산내리 청춘학당’이라는 두 권의 시집이 나왔다. 부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웃고 울고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게 했다. 자연과의 합일, 사람을 귀히 여기는 부부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김 교사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반쪽 교사, 반쪽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행히도 따르는 제자들이 있어서 행복했다”며 “교직을 마무리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제 반쪽 교사생활을 털어내고, 좋은 풍광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그림을 그리며 사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고 있다.

평생 화업을 함께 해온 김광옥(광주수완고)씨와 임혜숙(광주공고)씨.
평생 화업을 함께 해온 김광옥(광주수완고)씨와 임혜숙(광주공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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