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너구리도 인정한 동네 "우리도 분당가서 살래"

입력 2020.08.01 14:00

지난 8일 오후 8시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에 사는 A씨는 인근 여수천에서 애완견과 산책하다 큰 봉변을 당했다. 목줄을 한 강아지가 천변 산책로 인근 풀숲을 서성거렸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맹렬한 기세로 마치 자객같이 애완견을 덮치자 화들짝 놀란 A씨가 목줄을 잡아당기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와 몇 초 동안 대치하던 A씨와 애완견은 곧바로 고개 돌려 풀숲으로 도망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A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음날 시청에 신고했다. 불청객의 주인공은 너구리. A씨는 시청에 “너구리가 갑자기 애완견과 나에게 달려들었다”고 하소연했다. A씨와 애완견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야생 너구리/국립생태원
야생 너구리/국립생태원

야생 너구리/국립생태원
야생 너구리/국립생태원


◇생태 복원했더니 찾아드는 너구리가 문제네

수도권 대표 신도시인 경기 성남시 분당 지역이 야생 너구리 소굴이 됐다. 성남시가 도심 한가운데 가로지르는 탄천·여수천 등에 10년 동안 250억원을 투입해 생태복원사업을 해온 결과다. 사업은 총 6차에 걸쳐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황량했던 천변이 습지가 생기고 나무 숲이 우거지자 들쥐, 개구리 등이 살게 됐다. 먹잇감이 풍부해 분당 탄천으로 몇 년 전부터 너구리들이 몰려와 둥지를 튼 것이다.

이 때문에 A씨처럼 산책 중인 애완견과 견주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너구리는 3~5월 번식기를 거쳐 새끼가 여름철 탄생한다. 이 때문에 지금 시기가 부모 너구리들의 주변 경계심이 잔뜩 강해져 있다. 성남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너구리 주의보’를 발령한다. 팻말·현수막 등을 설치하고 분당 하천 일대가 너구리 거주지라고 홍보하며 바깥 산책에 나선 주민 안전을 챙긴다.

경기도 성남 탄천 인근에 너구리 주의 푯말이 설치돼 있다. /성남시
경기도 성남 탄천 인근에 너구리 주의 푯말이 설치돼 있다. /성남시

◇너구리 “같은 개는 시기해도 사람한테는 온순해요”

보통 시민이 오해하는 것은 너구리가 사람도 공격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다. 성남시에 들어온 민원은 “무섭다. 애완견과 함께 나를 공격할 것 같다”는 내용도 일부 있다. 너구리 신고 건수는 지난해 총 18건, 올해는 현재까지 총 15건이 접수됐다. 애완견이 상처 입은 경우는 지난해 5건, 올해 4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중 사람을 직접 공격한 경우는 없다.

대신 너구리가 애완견을 공격하는 이유는 영역 침범으로 봐서다. 풀숲을 자신의 집으로 인식해 살고 있는데 산책 나온 애완견이 풀숲을 불쑥 들어가서다. 보통 애완견의 신이 난 발걸음을 너구리 입장에서는 “우리 집을 공격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개와 너구리가 같은 개과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경기도청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너구리는 야생동물 치고 인간에 사납지 않다. 오히려 애교를 피우며 친근감을 표시한다”며 “이 때문에 유해동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 탄천의 10년전과 최근의 모습. 10년 전 하탑교 일대(사진 위)는 황량했지만 성남시가 생태복원사업에 나서 최근 하탑교 일대(사진 아래)는 수풀이 우거지게 됐다./성남시
경기도 성남 탄천의 10년전과 최근의 모습. 10년 전 하탑교 일대(사진 위)는 황량했지만 성남시가 생태복원사업에 나서 최근 하탑교 일대(사진 아래)는 수풀이 우거지게 됐다./성남시

◇성남시 “너구리도 분당주민”

성남시는 너구리를 직접 포획해 내 쫓을 수 없다. 생태계 일원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주민불안 해소를 위해 너구리 발견 시 수풀을 깎아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끔 유도한다. 너구리 입장에서는 벌초작업이 집을 부수는 일과 마찬가지다. 또한 광견병이 우려돼 예방 약품이 묻은 사료를 천변 곳곳에 뿌려 놓는다.

현재 탄천 일대 너구리가 얼마나 사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민원인들의 제보에 따르면 “새끼 너구리 3형제를 봤다” “부모와 새끼 등 4마리가 몰려다닌 것을 봤다” 등 다양하다. 성남시는 약 20마리 정도가 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늘어나는 개체 수를 강제로 줄일 수는 없다”며 “시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야생에서 살고있는 너구리가 국립생태원이 설치한 방범카메라 영상에 찍힌 모습. /국립생태원
야생에서 살고있는 너구리가 국립생태원이 설치한 방범카메라 영상에 찍힌 모습. /국립생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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