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뉴질랜드 대사의 편지… "철저한 조사했다" 막판까지 해명만

입력 2020.08.01 09:29 | 수정 2020.08.01 09:40

이상진 대사, 사건 보도한 언론에 두 차례 편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 있다" "성범죄엔 무관용" 해명
뉴질랜드 여론 인지하고도 조율 못해 '외교 참사'

자국민에 대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뉴질랜드 경찰 당국자가 31일 언론 인터뷰에서 “뉴질랜드 주재 한국 대사관에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협조 방안을 요청한 상태지만 받은 것이 아직 없다”며 “사실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면 한국 정부가 우선 수사에 협조해야만 한다”고 했다.

전날 뉴질랜드 외무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처에 공개적으로 “실망했다”고 밝힌 데 이어 뉴질랜드 경찰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뉴질랜드 대사의 편지, 막판까지 해명만 있었다

지난달 우리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한 뉴질랜드 언론사 뉴스허브. /뉴스허브 캡처
지난달 우리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한 뉴질랜드 언론사 뉴스허브. /뉴스허브 캡처
이런 가운데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던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측은 이번 사건을 보도한 뉴질랜드 언론 ‘뉴스허브(Newshub)’ 측에 지난달 10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대사(大使) 명의로 서한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허브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이번 사안을 비중있게 보도한 현지 언론사다. 뉴스허브 보도로 이 사건이 다시 알려진 후 뉴질랜드 조야(朝野)의 여론이 들끓었고, 저신다 아던 총리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간 통화에서 우리 외교관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는 ‘외교 참사’로까지 이어졌다.

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상진 뉴질랜드 대사는 두 차례 보낸 서한에서 “우리 대사관은 성범죄와 추행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zero-tolerance policy)을 고수하고 있다”며 “철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고, 피해자에게도 모든 합리적인 지원을 제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법정에서 유죄라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가 있다”며 “그가 뉴질랜드로 돌아가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을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했다.

이 대사는 A씨가 뉴질랜드에서 임기를 마치고 아시아 주요국의 총영사로 이동한 데 대해서는 “내가 아는 한 지금 자리로 간 것이 외교부 내에서 승진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국·뉴질랜드 정상 통화(지난달 28일) 전까지 수습·조율할 시간이 충분했는데, 우리 외교 당국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외교 사고’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소통하고 있다” “사실관계 확인중” 변명만…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뉴시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뉴시스
상황이 이런데도 외교부는 기자들과 만나 “사실관계 확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외교부가 사건이 벌어진 2017년 말 당시 대사관 관계자들의 증언을 모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뉴질랜드 측이 거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전직 외교부 고위 간부는 “뉴질랜드에서 관련 전문이 오지 않았고 사실을 감추기 급급했다면 현지 공관의 잘못이지만, 그런 보고가 전문으로 왔다면 본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어야 했다”며 “상황이 커지기 전에 관리했어야 하는 일을 정상통화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건 할말을 잃게 만든다”고 했다.

해외 공관의 도덕적 해이와 성 추문 사고는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주에티오피아 한국 대사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2018년엔 주파키스탄 대사관 외교관이 부하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캄보디아와 일본 공관에서 직원의 성추행 혐의가 적발됐다. 구조적인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공관 감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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