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60] 충분과 과분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8.01 03:14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아주 오랫동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처음 드는 생각은 '잠이 너무 부족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직장인들은 시간과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취준생들은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각 분야 1위 유튜버들조차 구독자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린다(고 한다).

브레네 브라운의 책 '마음 가면'은 인간의 취약성에 관한 책이지만 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한 뜻밖의 단서를 제시한다. 그녀의 진단에 따르면 이것이 모두 '네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래(never enough)' 문화에서 파생했고, 뭔가 부족하다는 걱정이 현대인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며 미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됐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출간을 막고 싶어 했다는 조카의 책 제목이 'TOO MUCH and NEVER ENOUGH'라는 것도 나는 무척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일상이 된 시대에 태어난 세대는 동네나 학교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SNS를 통해 세계 최고 실력자와 비교해 내가 초라해지는 순간을 수시로 체험한다.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면화되면 '수치심'이 생기고,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사람은 자신을 과장하게 된다. 요즘 예능 프로에 자주 등장하는 과시를 뜻하는 '플렉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만하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에는 유독 연예인 같은 미남·미녀가 넘쳐난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희귀하니, 분명 늘리고 깎는 교정 필터 효과가 클 것이다.

'부족함'을 느끼는 건 성장의 동력이다. 하지만 '부족해'가 내면화되면 정신을 갉아먹는다. 저자에 따르면 'never enough' 문화에 대항하는 건 풍요로움이 아니라 충분함이다. 지금의 나를 '비교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행복'을 좇는 일보다 '다행'을 감사하는 마음이 오히려 행복 지수를 높이는 역설을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