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182] I breathe poetry

조선일보
  • 이미도 외화 번역가
입력 2020.08.01 03:14

'우주를 구성하는 건 원자가 아니고 이야기다(The universe is made of stories, not atoms).' 미국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의 은유입니다. 그럼 인생이라는 이름의 우주를 구성하는 건 뭘까요. 사랑(love), 상상(imagination), 재미(fun), 변화(evolution)입니다. 각 영어 단어 첫 글자를 연결하면 'life(인생)'니까요. '패터슨(Paterson·사진)'은 동명(同名)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패터슨'
무대는 미국 조지아주의 쇠락한 도시 패터슨. 노선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활동 공간은 집과 버스, 집 근처 폭포 공원과 심야 술집 등 네 곳입니다. 이렇듯 패터슨의 일상이 쳇바퀴 같은 기승전결에 갇힌 듯 보여도 그는 노동자로서만 숨 쉬진 않습니다. 그의 새 꿈은 시인입니다.

'경험을 들이쉬고 시(詩)를 내쉬라(Breathe in experience, breathe out poetry).' 뮤리얼 루카이저의 은유입니다. 경험에서 시가 탄생한다는 뜻이지요. 패터슨의 시에 영감을 주는 뮤즈는 아내의 사랑, 폭포 물줄기, 승객들 대화, 주점 단골 필부들의 희로애락입니다. 이 화수분에서 그는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견합니다. 아뿔싸, 시집을 내도 될 만큼 그의 상상력이 공책을 채웠을 무렵 경악할 일이 벌어집니다. 부부가 나들이한 사이 애완견이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겁니다. 패터슨 머리가 진공이 됩니다.

바뀐 장면은 폭포 앞 벤치. 여행 온 일본 시인이 실의에 찬 패터슨 곁에 앉아 책을 펼칩니다. 이 도시를 노래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입니다. 패터슨이 놀라워하며 눈길을 주자 일본인이 이럽니다. "저는 시를 숨 쉽니다(I breathe poetry)." 시를 읽거나 쓰며 시와 더 가까워지면 인생이 더 가치 있게 변화할 거란 메시지가 깃들어 있지요. 상대가 아마추어 시인인 걸 모르고 한 말일 테지만 패터슨은 자극받습니다.

헤어지기 전 일본인이 공책을 선물하며 덕담합니다.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지요(Sometimes an empty page presents the most possibilities)." 패터슨이 공책을 펼쳐 다시 시작(詩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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