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시행 첫날, 갈등 폭발

입력 2020.07.31 18:34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임대차 2법’ 시행 첫날인 31일, 일선 전·월세 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패닉에 빠졌다. 새로운 제도 적용 문제를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곳곳에서 폭발했고, 공인중개사들도 “집주인뿐 아니라 세입자들로부터도 갑작스레 시행된 법과 관련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집주인들은 주로 임대차법을 회피할 묘수를 묻고, 세입자들은 법 시행 전 집주인이 계약 해지를 통보했는데,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고 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동안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줬는데, 금리가 워낙 낮으니까 다만 월세 몇 십만원이라도 좀 받게 해달라고 했더니 ‘절대 못한다. 법대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 내가 계약 만기 전에 집 팔아버리고 말지, 재계약은 절대 못해줘.”

2년 전 서울 성동구 C아파트를 전세 놓고 올 10월 말 계약 만료를 앞둔 집주인 이모(65)씨는 이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세입자가 괘씸해서라도 10월 전에 실거주할 매수자를 찾아 집을 팔겠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A공인중개업소 안모 대표는 “집주인 중에는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준 사람들도 있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재계약을 해주더라도 재계약한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현재 세입자를 내보내고 시세대로 전셋값을 올려 받거나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날 시행된 임대차 2법에 따르면, 현재 전·월세 세입자가 계약 기간이 끝날 때 재계약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재계약 때 전·월세 가격을 5% 이상 올릴 수 없다.

그러나 재계약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현재 세입자를 내보내고 신규 세입자를 들이며 시세대로 전·월세 값을 올려 받겠다고 벼르는 집주인이 많다는 것이다. 서울 잠실 헬리오시티 부근 H공인중개업소 홍모 실장은 “작년 입주할 땐 전세가 6억원대였는데 지금은 10억원대로 뛰었다”며 “재계약 기간이 끝나는 앞으로 2~4년 후에는 전·월세 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임대인이면서 동시에 임차인인 사람도 많아 재계약 시기와 전셋값 고민이 큰 사람이 적잖다”고 전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내용증명을 주고받는 등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R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업소 최모 대표는 “내용증명이 난무하고 있다”며 “임대인·임차인 양측 다 법조인인데 임대인이 ‘법 시행 전 매매 계약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못 한다’고 임차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자, 임차인도 어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했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실제 거주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글도 이어지고 있다. 한 임차인은 “전세 계약 만료가 3개월가량 남았는데 집주인 어머니가 실거주 예정이라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해 왔다”며 “집주인이 거짓말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손해배상을 위해 (실거주 여부를)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세입자는 “집주인이 연락 오면 받지 않고, 버티면 된다”며 “집주인이 집을 판다거나 새 세입자를 구한다고 하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버티면서 집을 안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집주인들이 직접 입주하겠다며 재계약을 거부할 경우, 매물 부족과 크게 올라버린 전세를 새로 구해야 하는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재계약을 한다고 해도 재계약 후 2년간은 전셋값 인상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가 또 걱정이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전세 품귀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셋값도 폭등할 우려도 크다.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4년째 전세 살고 있는 김모씨는 “2년 재계약을 하더라도 애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몇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집주인이 2년 뒤 나가라고 할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가뜩이나 전세 물량이 줄었는데 임대차법으로 올 가을 전세 대란이 올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신규 입주 물량이 올해의 절반으로 반 토막 나고, 확실한 공급 대책도 없어 2~4년 주기로 ‘미친 전셋값’ 폭등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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