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국정원장은 대통령에게 충성, 법무부장관은 명령에 충성

입력 2020.07.31 17:59 | 수정 2020.07.31 18:04


공직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근무 조건인가, 연봉인가. 승진과 장래 비전인가. 모두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나는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명분을 위해 충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서둘러 임명된 박지원 국정원장은 대통령에게 충성한다고 본인 입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법 제2조는 이렇게 돼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두며,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 여기에 따르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정보원 직원법 제15조는 이렇게 돼 있기 때문이다. ‘직원은 취임할 때에 원장 앞에서 다음의 선서를 하여야 한다. "본인은 국가안전보장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준수·복종하며, 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지 대통령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7월3일 후보자 내정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소셜 미디어에 이런 글을 올렸다.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저런 반응이 나왔겠나 싶지만 그러나 국정원장은 "대통령님을 위해 충성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국정원법 제8조는 국정원장과 차장, 기획조정실장에게 겸직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으며, 제9조는 ‘원장·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정당의 소속이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다음, 요즘 윤석열 검찰총장 못지않게 현 정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지난29일 국회 법사위는 사실상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 여당 의원들은 3시간10분 동안 최 원장에게 융단폭격을 가했고, 심지어 탄핵까지 거론했다. 이유는 하나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해 그 ‘적절성’을 따지고 있는 감사원이 문재인 정권에게 불리한 감사 결과를 내놓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최재형 원장이 지난 4월 직권심리 과정에서 이렇게 말한 대목이 정권과 여당의 심기를 건드렸다. 최 원장 발언이다.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여당 의원들은 이 발언이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했다고 들고 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신동은 의원은 이렇게 소리쳤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불편하고 또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 그러나 감사원법 제2조 1항은 이렇게 돼 있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 그렇다. 감사원의 직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독립적으로 수행된다는 뜻이다.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감사원도 대통령에게 소속돼 있지만 감사원장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자리가 아니라 직무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재형 원장은 직무에 충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겠다. 윤 총장은 작년7월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윤총장"이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임명장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총장은 올해 1월2일 검찰 가족들과 함께 한 신년사에서 자신은 오로지 헌법에 충성하는 사람임을 무려 다섯 차례나 천명하고 있다. 1)"헌법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국민의 말씀을 경청하며," 2)"수사관행과 문화를 헌법과 국민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며," 3)"불공정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4)"헌법정신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검찰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5)"검찰총장으로서 저는, 헌법정신과 국민의 뜻에 따라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여러분을 응원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헌법에 충성할 것임을 다짐하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문 대통령님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말은 단 한 구절도 없다.

마지막으로 추미애 법무장관을 본다. 추 장관이 충성 얘기를 꺼낸 적은 없다. 그러나 추 장관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추 장관은 ‘수명자(受命者)’라는 표현을 즐겨쓴다고 했다. 명령을 받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올해 1월 추미애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명을 거역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당시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는 점이다. "꼭 왕조시대같이 명을 거역했다는 표현은 지나치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할 수는 있지만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는가." "(윤 총장이 사표를 낼 가능성에 대해서는) 버텨야 되고, 버티리라 본다." 그랬던 정치인 박지원이 국정원장 내정을 받자 문 대통령님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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