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대 490억, 모더나가 부러운 국내 코로나 백신 업체들

입력 2020.07.31 14:21 | 수정 2020.07.31 17:15

[김민철 기자의 복지4.0]
그나마 아직 한 푼도 지원 못받아

신종 코로나 백신 3상 임상시험에 돌입한 미국 바이오업체 모더나(Moderna)는 지난 26일 미 정부로부터 4억7200만달러(약 5672억원)를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로써 모더나가 받은 정부 지원금은 9억5500만달러(약 1조 1474억원)으로 늘어났다.

모더나 외에도 노바백스(16억 달러, 약 1조9152억원), 존슨앤존슨(4억5600만 달러),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12억 달러) 등이 미 정부로부터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한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받았다. 화이자는 19억5000만 달러(2조3345억 원)를 받고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최종 입증하는대로 3억명 투여분을 우선 공급하는 계약을 미 정부와 체결했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민간기업에 10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붓는 프로젝트 ‘오퍼레이션 워프 스피드(Operation Warp Speed)’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제약사들이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을 지원하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 빌 게이츠 재단 등으로부터 받은 지원금과는 별도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모더나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모더나 본사. /로이터연합뉴스

◇미 제약사들은 수조원씩 지원받아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정부는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개발 임상시험에 각각 450억원, 490억원을 지원하겠다며 이를 3차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했다. 또 후보물질 발굴과 독성평가 등을 하는 전임상 단계에 17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31일 한 국내 백신 개발업체에 알아보니 “아직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업체는 제넥신이 1/2a상을 진행 중이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연내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또 메디톡스가 호주 백신 업체 '박신'과 손잡고 1상 임상시험 중이다.
국내 백신개발업체 관계자는 “추경에서 코로나 백신 개발 지원 예산으로 490억원을 배정했는데, 아직 지원받은 돈은 없다”며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지, 다른 업체들과 어떻게 나눌지 등은 두고봐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알아보니 지원 희망 업체는 8월5일까지 신청하라는 공고를 지난 27일 냈다. 심사 등을 감안하면 빨라야 8월말에나 첫 집행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코로나 백신 개발 지원금 규모는 올해 예산만 비교하면 100억달러(약 12조원)대 490억원으로 약 250배 차이가 난다.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는 경제력 규모에서 차이가 있고, 미국의 경우 코로나 상황이 우리나라보다 휠씬 심각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백신 개발에 올인하며 예산을 투하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250배 차이가 나고 그나마 우리는 아직 한 푼도 집행하지 않은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끝까지 지원하겠다” 잘하는 일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신종 코로나 치료제·백신 개발에 "행정 지원도 돈도 아끼지 말라"며 "이 부분만큼은 끝을 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진단시약, 진단키트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갔듯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도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가면 좋겠다는 강한 열망을 갖고 드리는 말씀"이라고 했다.

안일환 기획재정부 2차관도 지난 10일 코로나 백신을 개발 중인 제넥신을 방문해 “무엇보다도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이 시급하다”며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먼저 개발하더라도 우리 독자적인 백신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정부가 이번에는 늦더라도 코로나 백신 개발을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그동안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정부는 백신·치료제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해놓고 흐지부지했다. 그 결과 이번에 신종 코로나가 나왔을 때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미국 제약업체들이 신속하게 백신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감염병 백신을 개발해온 경험이 있고 비슷한 플랫폼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해외보다 백신 개발 속도가 늦다고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백신을 최초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좋은 백신을 내놓으면 경쟁력이 있는데다, 국내 백신 개발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해외 업체들과 백신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글로벌 제약사들은 우리나라에 한 명분 당 미국(10달러, 1만2600원), 유럽(10유로, 1만8000원) 수준의 가격을 요구했지만 녹십자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낮은 가격에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듣고 국내 치료제·백신 개발 업체들이 이번엔 충분한 지원을 받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놓고 아니었다. 적어도 예산 지원은 너무 느린 것 같다. 어차피 모더나·화이자 백신을 구입해 한번 전국민에 접종하려면 2조5000억원 정도(5만원 안팎×5000만명)의 예산이 든다. 지금 상황으론 해마다 맞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드는 예산을 국내 백신 지원에 선투입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할 수는 없을까.

성영철 제넥신 회장은 얼마 전 한 언론과 통화에서 “우리가 외국 선두업체보다 두 달 정도 출발이 늦었다”며 “국내에서도 미국·유럽처럼 정부의 파격적인 자금 지원과 더 신속한 임상절차가 진행된다면 백신 개발 일정을 다소 당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에도 말잔치만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지원하더라도 너무 늦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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