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위로의 시간

조선일보
  • 이지유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0.07.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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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라도 한 듯 세 명의 지인으로부터 동시에 연락이 왔다. 20대, 30대, 40대인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나와는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전부인, 말 그대로 그냥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며칠 간격을 두고 모두 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그러곤 지방에 사는 나를 보러 오겠다고 한다. 주저 않고 그러라고 했다.

그들에겐 공통의 고민이 있었다. 수술과 항암치료 견디는 것도 버거운데, 남자친구들이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갔다. 지인들은 마중 나와 있는 내게 달려오면서 벌써 울고 있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는 그냥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다.

이지유 과학 칼럼니스트
이지유 과학 칼럼니스트

이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내가 두 번의 암 투병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15년 전 유방암과 갑상샘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화가 났다. 주어진 모든 일을 성실히 해내면서 살았는데 왜 내가 암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엔 두려움이었다. 힘든 치료를 견뎌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리고 몹시 외로웠다. 병을 이기고 건강한 몸을 되찾는 것은 오로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투병하는 내내 매주 수요일 저녁을 같이 먹어준 친구들이 있었고, 매주 목요일 점심을 먹어주는 친구들이 있었으며, 금요일엔 바리스타 과정을 같이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투병을 마치길 바라며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겨낼 수 있었을까?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파 찾아온 지인들에게 15년 전 친구들이 나에게 주었던 위로의 시간을 똑같이 나누어줄 생각이다. 투병이 끝날 때까지 주기적으로 만나 수다를 떨 생각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은혜 갚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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