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뉴딜' 이름이 아깝다

입력 2020.07.31 03:18

김승범 산업1부 차장
김승범 산업1부 차장

"정부가 현재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업들은 당장 죽게 생겼는데요."

정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한국판 뉴딜' 계획에 대해 한 기업인은 "이름만 뉴딜 아닌지 의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획기적 정책 전환으로 경제 위기의 근원적 해법을 모색했던 1930년대 미국의 오리지널 뉴딜과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한국판 뉴딜은 저탄소 경제·사회로의 전환(그린 뉴딜)과 디지털 기반 확대(디지털 뉴딜)를 축으로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들고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병을 고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데, 우리 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 반(反)시장 규제와 제조업 경쟁력 저하에 대해 정부가 고민한 흔적이 안 보인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뉴딜과 비교할 때 한국판 뉴딜은 우선 기존의 시스템을 뒤엎는 새로운 판 짜기와 거리가 있다. 현행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린 뉴딜의 핵심인 재생에너지 확대는 탈원전 정책을 통해 추진되어온 것으로 새로울 게 없다. 디지털 뉴딜에도 5세대 이동통신과 인공지능 융합, 디지털 교육 인프라 조성처럼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재탕한 게 많다. 뉴딜 성공의 전제 조건인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과감한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구체적인 규제 개혁 로드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 목표가 실현될지도 미지수다. '신재생에너지 산업통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8360명이었던 태양광 산업 기업체 근로자는 2018년 7732명으로 오히려 7.5% 줄었다.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산을 당해내지 못한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뉴딜로 생겨나는 일자리 수를 강조할 뿐 일자리의 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범여권의 한 국회의원은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해 "청년들은 이런 것을 '쓰레기 일자리'라 한다"고 했다. 세금 퍼붓는 단기 아르바이트 사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인사는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전체 일자리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업종"이라며 "생사기로에 놓인 제조업의 경쟁력 끌어올리기 대책이 빠진 이번 뉴딜 계획은 반쪽짜리"라고 했다. 그는 "단기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조업 혁신을 미뤘다가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면 '그린'과 '디지털'만 갖고 경제를 끌고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발 위기는 거창한 구호를 갖다 붙인 정책의 나열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뉴딜(New Deal)'은 카드 게임에서 패를 새롭게 돌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전략·전술 변화 없이 패만 바꿨다고 해서 잃은 돈을 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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