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자기 집 없으면 진보에 투표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31 03:22

정부가 무주택자의 '주택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정부의 3년 국정은 위선과 역설의 연속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 구호와 결과가 정반대인 역설이 3년여 내내 이어졌다. 민주화 세력이라더니 법치를 무시하고 군사독재 뺨치는 독단과 불통을 치달았다. 약자 편이라더니 저소득층 일자리를 없애고 가난한 사람을 더 못살게 하였으며 소득 격차를 최악으로 키웠다. 공정·정의를 입에 달고 살면서 조국 등의 편법과 반칙을 싸고돌고, 자기 편의 권력형 성폭력엔 눈감는 뻔뻔함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의도된 '정치공학'이란 점이다. 약자를 더 못살게 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청년들을 싸구려 세금 알바의 노예로 만들고, 검찰과 반대편 목을 조이고, 자기편 비리를 비호하는 것 등등이 다 계산된 통치술의 결과다. 국정 운영도 문 정권은 정치처럼 하고 있다. 부자와 서민, 자본과 노동으로 계급을 가르고 아군과 적군으로 진영을 갈라쳐 갈등을 증폭시키는 분열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해되지 않는 문 정권의 국정 폭주는 선거공학의 프레임으로 봐야 설명이 된다. 선거 승리라는 정파적 이익을 모든 것에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부동산 위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집값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언은 진심일까. 그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집값 안정에 즉효약인 공급 카드를 제쳐 놓은 게 첫 번째다. 오로지 규제와 세금 때리는 반쪽짜리 대책만 쏟아냈다. 정책 설계의 결함이 드러났지만, 되지도 않을 작동 불능 대책을 고집하며 3년 내내 똑같은 실패를 반복했다. 실패가 예정됐음을 알고도 밀어붙인 것이다. 이 정도면 무능 아닌 고의다. 그런데도 진정성을 믿어야 하나.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을 사달이 벌어졌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친문 국회의원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집값 안 떨어진다"고 했다. 말실수인가, 천기누설인가. 그는 해명이랍시고 "정부 정책이 부동산 값을 하락시키려는 정책도 아니지만…"이라 했는데, 이 말이 더 충격적이다. 문 대통령은 집값 급등 지역의 '원상회복'을 약속했다. 서울 집값이 3년 새 50% 이상 올랐으니 그만큼 내리는 게 목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집값 떨어트리는 정책이 아니라니 어쩌겠다는 건가. 청년과 무주택 서민이 영원히 자기 집을 못 사게 하겠다는 건가.

믿고 싶지 않지만 문 정권이 집값 하락을 바라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기 책에서 이렇게 썼다. "집 가진 사람은 보수적, 없는 사람은 진보적 투표 성향을 갖게 된다." 그는 "부동산 정책은 정치"라고 했는데 이 말이 핵심을 찔렀다. 그의 논리라면 집값이 하락해 자기 집 보유자가 많아질수록 좌파 집권에 불리하다. 반대로 무주택자가 집을 못 갖게 하는 게 유리하다는 기막힌 역설이 생긴다. 이 정부가 집값 잡을 진짜 대책을 외면하는 것은 그 때문인가. 무주택자의 '보수화'를 막겠다는 의도 아닌가.

의도했든 안 했든, 실제 부동산 정책이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아파트 공급을 줄이고 대출 물꼬를 틀어 잠그는 대책들이 모두 현금 부족한 무주택자의 자기 집 구입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주택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그렇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줄여놓고는 대신 '주거 복지'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영원히 무주택자로 가둬놓은 뒤 정부에 손 벌리도록 하겠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곧 계급정치다. 주택 유산층과 무산층으로 갈라친 뒤 계층 갈등을 증폭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집값 급등에 민심이 폭발하고 있지만, 그 분노마저 '계급적 분노'로 뒤집을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징벌적 세금을 퍼부어 주택 유산층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되니까. 세금 폭탄을 얻어맞는 종부세 대상자는 전 가구의 3%다. 3%의 주택 유산층을 때려 97%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집값 상승률이 11%라고 억지 부리는 국토부 장관을 유임시킨 것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22전22패'의 패장(敗將)을 그대로 앉혀놓은 채 부동산과의 전쟁을 이기겠다니 누가 믿겠나. 비난이 들끓자 이번엔 난데없이 수도 이전 카드를 꺼냈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긴다고 서울 집값이 잡힐지도 회의적이지만 그 의도가 뻔하다. 또 정치공학으로 국면을 반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문 정부에 집값 내릴 의지가 없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장(市場)이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3040세대의 '패닉 바잉'이 증거다. 정부의 진정성을 믿는다면 왜 집단 공포에 몰려 주택 선(先)매수에 나서겠는가. 이제 사람들은 문 정부가 집값 안정 대신 부동산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집이 없으면 진보에 투표한다"는 정권 실세의 말은 그냥 허투루 나온 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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