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민기 기자의 신사의 품격] 신사는 코로나에도 넥타이 色을 고민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28 05:00

대통령의 양복점 '브룩스'의 위기

채민기 기자의 신사의 품격
1818년 창업한 '미국 대통령의 양복점', 브룩스브러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는 소식에 무라카미 류 에세이집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를 다시 꺼내 읽었다. 브룩스브러더스의 위기가 드레스업(격식을 갖추고 옷을 차려입음)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류의 에세이는 옷 입는 기쁨을 일깨워 준다.

파산 보호 신청은 매각을 통해 새 주인을 찾는 과정이다. 영업 중단은 아니라지만, 드레스 다운(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간편한 옷을 입음)이라는 흐름 앞에서 200년 명가도 비상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는 그러잖아도 캐주얼이 대세가 된 남성복의 흐름에 결정타를 날렸다. 사람들은 일터에 나가지 않게 됐고 결혼식이나 면접처럼 갖춰 입는 자리는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많은 이가 복장 자유화를 반겼다. 아랫도리는 화면에 안 잡히는 줄 알았던 리포터 윌 리브가 집에서 '하의 실종' 차림으로 제약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복장 불량을 지적하기보다 수퍼맨의 아들(그는 '수퍼맨'으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이다)도 평범한 지구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문 닫은 뉴욕 브룩스브러더스 매장 앞을 마스크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문 닫은 뉴욕 브룩스브러더스 매장 앞을 마스크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드레스업은 영영 사라지게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갖춘 옷차림은 신뢰감을 주며 사람을 돋보이게 해준다. 모두가 티셔츠를 입는 시대엔 니트 넥타이나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 같은 아이템만으로도 제법 말쑥해 보일 수 있다. '조금 덜 갖추는 것보다 조금 더 갖추는 게 낫다'는 불문율은 계속 유효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옷 입기의 즐거움 때문에 우리는 드레스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는 외출하지 않는 날도 아침이면 옷장 앞을 서성이며 셔츠와 넥타이의 조합을 고민한다고 썼다. '십대에는 히피여서 넥타이를 하는 사람은 전부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했다'는 소설가는 이제 셔츠를 입으려고 넥타이를 매는 경지에 도달했다. 어떻게든 셔츠 입을 구실을 만들고자 슬쩍 방송 출연 기회를 타진하는 에피소드는 드레스업의 기쁨에 대한 가장 솔직하면서도 열렬한 고백이다.

패션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류는 이탈리아 여행길에 그곳 남자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셔츠의 매력에 눈떴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깨달음이다. 셔츠를 발견한 뒤로 그가 느끼는 생활의 빛깔과 질감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옷을 입는다는 행위는 이처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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