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주택은 이념 아닌 현실 문제… 잘못된 정책이 '투기판'을 만들어"

조선일보
입력 2020.07.27 03:10 | 수정 2020.07.27 07:52

'35년 주택개발업자'가 보는 집값 폭등…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지난 토요일 서울 시내에서 '징벌세금 못 내겠다! 미친 세금 그만 해라!' '사유재산 보장하라! 임대인도 국민이다!'라며 신발을 벗어던지는 항의 시위가 또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고 무려 22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 값은 무려 52%나 상승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집값과 세금 폭등은 없었다.

주택·부동산 현장에서 35년 몸담은 소위 '업자'인 김승배(59)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은 지금 사태를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런 결말이 뻔히 보였다. 주택은 이념이 아닌 현실의 문제다.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이 사무실에 앉아 현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집값을 잡겠다면서 올라가게 만드는 정책을 해왔다."

강남 부자만 때려잡는 줄 알았는데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를 나온 그는 대우건설 주택부문에서 근무한 뒤 시행업체인 피데스개발을 차려 성공했다. 주택 관련 부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 부동산 정책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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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배 회장은 “재건축·재개발을 투기로만 보면 주택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부동산 민심'이 폭발했나?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서울 강남 부자만 때려잡는 줄 알았는데, 보유세 인상으로 집 한 채 보유한 서민들까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 보유 가구 비율(2018년 기준)은 56%가 넘고, 2인 이상 가구가 67.5%나 돼 수적으로 집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보유세 부담이 높아져도, 집값 상승으로 그 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지 않나?

"집값 상승의 이득은 팔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고 나중에 집값이 떨어지면 사라질 수 있다. 보유세를 올려도 충격을 완화하는 쪽으로 하고, 집을 처분할 수 있게 출구를 내줘야 한다. 지금은 퇴로를 막은 채 '전격 Z작전'처럼 하고 있다. 과거에는 집 매물을 내놓게 하려고 일시적으로 양도세를 줄여줬다."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를 대폭 인상해놓고, 양도세·취득세·등록세 등 거래세도 올리니 불만이 폭발하는 것인데.

"숨통을 조이는 규제와 세금으로만 해결하려니 시장에서 먹힐 리 없다. 보유세를 때리면 집을 내놓을 것으로 봤지만, 양도세가 너무 높으니 그냥 두들겨 맞으며 갖고 있는 것이다. 1가구 1주택자는 집 팔고 양도세를 물면 옮겨가고 싶은 아파트를 살 수가 없다. 은행 대출도 못 받는다. 이는 실질적으로 주거 이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집값 폭등의 근본적 원인은?

"집값 폭등은 사람들이 원하는 아파트 숫자보다 공급이 적어 생기는 것이다. 수요만큼 공급 안 되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시장 원리다."

―공급이 적은 게 아니라, 투기 세력이 여러 채씩 사들이고 시중에 풀린 돈이 갈 데 없어 '가수요'가 높은 것이 아닌가?

"수요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품질을 말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에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그곳에 아파트를 많이 지으면 가격은 안 올라간다. 아파트를 살 때는 '가격이 안 떨어지고 올라갈 것'이라는 계산에서 사지,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전세를 택하지 무리하게 집을 사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해왔다. 아파트를 한번 사고팔면 일반 직장인들이 받는 일년 봉급보다 몇 배를 더 버는 상황이 벌어져왔다. 사회적 위화감은 물론이고, 이는 결코 공정과 정의일 수 없지 않은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0년에 한 번 정도 집을 사고판다. 지역별로 예상되는 수요만큼 계속 공급이 되고 아파트 매매로 큰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투기 광풍은 일어나지 않는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투기판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를 사놓으면 언젠가는 오르고 돈을 벌게 된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는데?

"노태우 정부 시절 200만호 주택 건설을 하자, IMF가 오기 전까지 물가상승률을 뺀 주택 실질 가격이 40%나 떨어졌다. 1996~1997년에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17만호였다. 서울 아파트에도 미분양이 많았다. 당시 내가 근무한 대우건설에서만 미분양을 5800여호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집을 안 사니, 아파트 건설 업체들이 그때 많이 도산했다."

노무현 부동산 정책 실패의 再版

―노무현 정권 4년 차인 2006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년 대비 24% 상승하는 등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노무현의 국정 지지율은 12.6%까지 떨어졌는데?

"노무현 정권에서도 지금처럼 규제 대책을 쏟아냈으나 집값이 솟구쳤다. 막판에 기조를 바꿔 동탄·파주·문정 등에 2기 신도시를 확대 지정하는 공급책을 썼지만 이미 늦어 집값을 잡지 못했다. 그 뒤 용인·고양 등 도시 개발까지 이뤄져 이명박 정권 때는 주택이 단기간에 과잉 공급됐다.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겹쳐 2009~2010년에는 집값이 30~40% 내렸다. 수요만큼 공급이 있으면 집값은 안정된다는 뜻이다."

―인구는 줄어들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니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예측이 있었는데?

"주택 수요는 인구가 아니라 '가구(household)'에 달려있다. 1~2인 가구가 늘어나 주택 부족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가 주택 시장에서 주된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젊은 세대는 '영혼이라도 끌어서 집을 사겠다'고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거의 불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다 '앞으로 재건축이 없어 신규 주택 공급은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줬다. 집값이 안 치솟으면 이상한 것이다. 임대주택 사업자까지 규제했다. 전세 물량이 줄면서 전셋값도 폭등했다. 지금 사태는 이미 과거 경험에서 다 예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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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정부는 태릉 군골프장 등을 개발하겠다는데?

"아파트 실수요자는 통상 사업지의 반경 4㎞ 생활권에 있는 사람들이다. 태릉골프장 개발로는 지금 서울시 주택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서울에는 사실상 더 지을 부지가 없다. 그린벨트 해제를 어떻게 보나?

"그린벨트를 풀면 미래 세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 헌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면 된다. 신규 주택 공급은 재개발과 재건축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너무 막아놓았다."

―재건축·재개발 발표는 지역 땅값 폭등과 투기 광풍을 불러왔는데?

"재건축·재개발을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으로 보지 않고 막아야 할 투기 행위로만 보면 주택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근린생활 시설과 오피스, 다세대 가구도 낡고 오래되면 허물고 다시 짓는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나 재개발에 대해서만 너무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조합원과 개발·건설회사, 투기 세력이 과도한 이익을 챙겨가고,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를 몰아내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걸로 보는 것 같다."

―재개발할 경우 원주민이나 임차인은 대부분 삶터를 잃고 쫓겨난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가능한 한 현재의 모습을 살리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고, 현 정권도 그런 노선에 서 있는데?

"임차인에게는 공공주택을 제공하고 개발 이익은 적절한 환수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편익이 높은 쪽으로 가야 한다. 도시의 역사(歷史)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온 역사다.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다. 현 정권의 주택 정책은 이런 도시 발전 방향과 맞지 않는다. 집값 폭등은 도시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을 못 만들어줘 발생한 것이다."

―신규 아파트를 계속 지어야 굴러가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논리가 아닐까?

"우리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 도시들의 발전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 형태를 봐도 단층·단독주택에서 시작해 2·3층 연립주택, 그 뒤 걸어서 올라가는 5층짜리 아파트, 다음 단계는 서울 마포에 10층 이상 아파트, 1기 신도시부터 고층 아파트가 지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집에 대한 사람들 의식이나 취향도 많이 바뀌어온 셈인데.

"1990년대 1기 신도시 때는 아파트 천장까지 높이가 2.3m였지만, 사람들의 평균 신장 변화로 지금은 2.4~2.5m다. 과거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주민공동시설이 없었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다세대 주택이나 반지하에도 살았다. 지금 신혼 세대는 단지형 아파트에만 살려고 한다. 이들에게 비(非)아파트는 주택이 아니다. 이런 요구에 맞춰 재건축이 이뤄져야 주택난이 안 생긴다."

―사실상 주택난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발생하는데, 얼마나 공급돼야 하는가?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수도권 인구는 22만명이 더 늘어났다. 계산상 주택 10만채의 수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주택 통계에 잡혀 있어도 너무 낡아 살 수 없는 '사회적 멸실'이라는 게 있다. 서울에서 멸실 주택은 매년 3만~4만채 생긴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만 매년 8만~9만호씩 지어야 한다."



토건족 논리

―주택난을 해소하려면 용적률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서울은 건축물을 지을 땅이 1인당 9평도 안 되는 29㎡에 불과한데도, 고층 아파트 건설이 허용되는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을 400%에서 250%로 내렸다. 400가구 짓던 땅에 250가구만 짓게 된 셈이다. 35층 이하 규제도 문제 있다. 위로 더 올라가야 하고, 단위면적당 가구수 밀도는 높여야 한다. 과거에는 4인 가구 기준으로 방이 최소 3개여야 했다. 지금 서울의 한 가구는 2.5명 이하다. 방 2개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낡은 집 두 채를 허물면 좋은 새집이 세 채가 나온다."

―부동산 정책은 천체물리학처럼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현 정권은 왜 이런 외통수 상황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아파트 공급 부족이라고 지적하면 '토건족 논리'로 치부했다. 이를 안 받아들이니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 나온다."

정책 실패를 한 번도 인정한 적 없는 게 현 정권의 특징이다. 서민들이 몰려나와 신발을 던지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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