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의 pick] 직접 빚어 철판에 구운 토르티야 멕시코 '찐' 타코에 도전한다

조선일보
  • 정동현
입력 2020.07.25 03:00 | 수정 2020.07.27 10:18

[아무튼, 주말] 타코

서울 구의동 '멕시칼리'

주문 프린터에서 "드드득" 소리가 났다. 주방장이 메뉴를 읊기도 전에 토르티야를 철판에 올려놓았다. 2초 정도 지났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 모어 타코(One more taco)!"

호주 멜버른, 동남아와 남미 음식을 취급하던 레스토랑 구석에서 토르티야를 빚고 구울 때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을 실감했다. 미국·영국·호주까지, 어디에나 있는 멕시코 음식점의 역사는 침략과 이주, 이민의 역사와 궤를 함께했다. 그리고 그 궤의 한 자리를 내가 차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멕시코 음식은 가난한 이주민의 음식이 아니다. 현재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레스토랑 체인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회사는 멕시코 음식을 파는 '치폴레(Chipotle)'다. 히스패닉 인구의 확산, 건강식에 대한 관심 등이 치폴레의 성공 비결이다.

변변한 멕시코 레스토랑 찾기 어렵던 한국도 변화가 눈에 띈다. 멕시코는 아니더라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먹어본 타코 맛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봉지에서 뜯은 나초칩과 튜브에서 짠 치즈를 올려놓고 팔던 오래전 대학가 호프집의 기억은 지워도 좋다.

서울 구의동 멕시코 음식점 ‘멕시칼리’의 돼지고기·피시(생선)·소고기 타코(오른쪽부터).
서울 구의동 멕시코 음식점 ‘멕시칼리’의 돼지고기·피시(생선)·소고기 타코(오른쪽부터).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삼성중앙역 인근 빌라가 다닥다닥 붙은 골목에 들어선 '비야게레로'는 주인장이 직접 멕시코에서 타코를 배워온 곳이다. 멕시코 국기, 스페인어로 적힌 자격증, 페인트로 칠한 벽을 보니 멕시코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가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덩치 좋은 주인장이 뼈를 저밀 것 같은 넓적한 칼로 고기를 써는 모습에 그 기분은 더 진짜 같아졌다.

하얀 접시에 올려진 타코를 반으로 접어 입에 넣으니 과일을 씹는 것마냥 즙이 쭉 나왔다. 고기에 밴 소스와 레몬 즙이 맵고 신, 강한 맛을 지닌 채 입속을 파고들었다. 문밖에서 친구가 기다리는 꼬마애처럼, 일단 타코를 집어 들면 한 입 두 입, 한꺼번에 먹어 치워야 했다. 서로 낄낄거리며, 흘린 타코에 흠을 잡지 않는 사람과 함께 고개를 맞대고 먹는 음식이었다.

'힙지로'라고 불리는 서울 을지로에도 타코 식당이 생겼다. 이름하여 '타케리아 스탠'. 을지로 8번 출구로 나가 왼편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식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인쇄소 사거리에 자리 잡았다. 앉을 자리는 앞에 적당히 놓인 상자와 몇 안 되는 의자가 전부.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은 서서 타코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색빛 을지로 풍경을 보며 먹는 타코는 그 자체로 숨길 수 없는 멋을 이뤘다.

멕시코와 미국에서 먹은 타코를 재현했다는 주인장은 무심히 모자를 눌러쓰고 토르티야를 구웠다. 돼지 목살, 곱창과 소시지의 일종인 초리소 중에서 고를 수 있는 타코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수가 넉넉히 올려 있었다. 닭가슴살을 다져서 만 '치킨 타키코'는 담백한 맛이 물리지 않았다. 토르티야 두 장 사이에 치즈를 넣어 구운 퀘사디야는 정교한 구성에 여느 요리 못지않은 만족감이 들었다.

서울 구의동 아차산역 사거리에 가면 부부가 운영하는 '멕시칼리'가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가까운 멕시코 도시 멕시칼리(Mexicali)에서 음식을 배운 부부는 그 지방 전통에 따라 밀가루를 쓴 토르티야를 직접 빚어 굽는다.

식당에 들어서니 직원이 기운차게 인사하며 웃는 낯으로 반겼다.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팀 스포츠를 하듯 동작과 시간을 맞춰가며 움직였다. 스페인어를 쓰는 외국인도 군데군데 보였다.

손이 큰 이모가 담아준 것마냥 고수와 소스를 넉넉히 뿌린 타코는 입을 꽉 채우는 맛과 양을 가졌다. 박스 채 쌓아놓은 아보카도를 직접 으깨어 양파와 토마토, 레몬 즙을 짜서 만든 과카몰레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산미와 풍성함을 지녔다. 몬트레이 치즈를 녹여 고기와 함께 말아낸 퀘사디야는 이미 그 자체로 한 접시를 차지한다. 섭섭지 않게 든 내용물도 좋지만 핵심은 겉을 감싼 토르티야다. 직접 구웠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얇고 야들야들하며 쫀득한 질감을 가졌다.

손님이 자리를 비우면 의자와 테이블, 메뉴판까지 깨끗이 닦는 직원들, 직원들 틈에서 구별할 수 없는 주인장 부부는 타코를 먹으며 흥이 돋은 손님들을 위해 땀을 흘렸다. 뜨거운 생동감, 거침없는 싱그러운 맛은 타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조용히 내뿜는 숨소리와 감출 수 없는 반짝이는 눈빛에 이미 그 맛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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