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 생각 말하는 데 눈치 안 봐… 공격받아도 할말과 할일 해야"

조선일보
입력 2020.07.20 03:12 | 수정 2020.07.20 07:06

'여당의 쓴소리 소신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용진 의원은 여당 내에서 '언론 자유'를 가장 폭넓게 누리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을 묻는 취재진에게 'XX자식' 욕으로 틀어막은 박원순 시장 자살과 관련해서도 그랬다. 그는 "당 차원 진상 규명과 책임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문자 세례를 받고 비난 댓글도 많이 달렸다. 하지만 정치인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움츠리거나 눈치 봐서는 안 된다. 오해와 공격을 받아도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침묵하는 것은 정치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 정부를 기대했지만 현실에서는 청와대 정부가 됐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민주당 정부를 기대했지만 현실에서는 청와대 정부가 됐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여당에서 현 정권의 부동산 대책 실패를 공개 비판한 이도 그가 처음이었다. 조국 사태 때는 "국민이 납득할 해명을 내놓으라"고 앞장섰다. 윤미향 사태에서는 "회계 투명성을 해명 못 하면 비판받아야 한다"고 했고, 대북 전단 문제로 난리 치는 북한에 현 정권이 눈치를 볼 때 "종이때기 몇 개 날아간다고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 그 체제를 반성하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별로 환영 못 받겠지만, 이번 총선에서 그는 민주당 서울 출마자 중 최고 득표율(64.45%)을 기록했다. 유권자들은 그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유권자에 대한 모독

―소위 '문빠'는 좌표를 찍어놓고 문자 폭격을 유도하는데, 박 의원에게 그런 좌표가 찍힌 적은 없나?

"요즘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우리 당의 과거 주류였던 동교동계에 가장 쓴소리를 많이 했던 분이 노무현·이해찬이었다. 당시 주위에서 '손해를 볼 텐데 왜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 뒤 평가를 받았다. 당장은 지지층의 욕을 먹더라도, '내가 야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며 상대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선들에게는 '가방 모찌를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계파에 속해 거수기나 행동대장이 되면 이는 선출해준 국민 기대에 반한다는 뜻으로 말했다. 자신이 어떤 유력 정치인의 구성물로 비치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정치는 혼자 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 계보 아니냐'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잘못된 활동을 해온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쓴소리의 원조는 7선(選)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이다. 그에게 '정치인의 꼭 필요한 덕목이 뭐냐?'고 물은 적 있다. 그는 '당장 불이익과 손해가 있더라도 발언하고 행동하는 용기'라고 답했다.

"동감이다. 당시에는 욕을 먹어도 언젠가 평가가 달라지면 그걸로 행복하지 않겠나. 박정희가 격렬한 반대 속에도 경부고속도로를 안 만들었으면 산업화와 수출 입국을 못 열었다. 김대중도 반대를 무릅쓰고 전국에 광케이블을 안 깔았으면 우리나라는 IT 강국이 못 됐다."

―전국에 광케이블을 까는 사업은 전두환 정부에서 했고, 김대중 정부는 초고속인터넷 도입으로 IT산업을 활성화했다.

"그런가. 어쨌든 당장 손해 보고 욕을 먹어도 정치인에게는 이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지금은 당내 비주류나 변방이지만 언젠가 주류로 바뀔 날이 올 것으로 본다."

―극단과 막말 선동을 택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식의 정치가 유행이 되고 있는데?

"나는 결코 그런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 상대를 포용하는 정치여야 둘로 쪼개진 우리 사회를 통합해갈 수 있다고 본다."

―당내에서 쓴소리를 하는 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을 '조금박해'로 부른다고 들었다.

"서로 짜거나 따로 모임이 있지도 않은데 그런 조어가 만들어졌다. 쓴소리하는 별종으로 당에서 같이 욕을 먹고 있다."

―찬성 당론을 정한 공수처 법안에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은 공천 탈락되고 징계까지 받았는데?

"재심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당헌 당규에 '당원은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표결 행위에 대한 징계 규정은 없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표결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더욱이 금태섭은 공수처법에 반대가 아닌 '기권'을 했다. 그게 당론 위배라면 당시 투표에 참석 안 한 불출석 의원들도 당론 위배 아닌가."

―과거에도 당론에 반하는 표결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징계 절차를 밟은 적은 없었다. 전체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현 정권의 분위기에 민주당 내부도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주의는 제도와 헌법·법률의 틀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전통·관습·배려·절제·타협이 있어야 한다. 너무 일사불란을 강조하면 이런 가치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소속 의원들이 '문빠'의 문자폭탄에 겁먹고 지배되면서 이런 획일적인 당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즉답을 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여당이 '청와대 출장소'라는 말을 들으면 모욕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직표에 여당이 청와대의 하부 기구처럼 돼있는 것 같다.

"문재인 정권 출범 때 우리 당 구성원은 '민주당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 대통령 단임제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 정부'로서 당이 정책 추진 과제를 밝히고 5년 안에 못 하면 정권 재창출을 통해 10년, 15년까지 완수하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청와대 정부'가 됐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문제

―여당이 결국 상임위원장 18석을 독식했다. '입법 독재'라는 말이 나온다. 관례대로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주고 협조를 받는 게 맞지 않았나?

"우리 당 지도부도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통합당은 거의 모든 법안에 발목을 잡았다. 개인적으로 내가 발의한 '유치원 3법' 통과에만 1년 4개월 걸렸다. 사립유치원 운영을 투명하게 하자는데 이렇게까지 막을 일이었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
―박 의원은 사립유치원법으로 매스컴의 조명을 받았으니 이 문제를 언급해야겠다. 머릿속으로 옳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투명성을 내세워 사립학교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을 밀어붙였지만, 사립유치원의 운영 현실을 간과한 조치였다. 대부분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의욕을 잃고 빨리 문 닫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유치원을 '교육 사업'으로 보고 이득을 취해왔다. 투명한 회계 시스템으로 그게 어렵게 되니 불만을 갖는 것이다."

―유치원 원장들은 대부분 자기 재산을 넣어서 유치원을 설립 운영해왔다. 사립학교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사적 이득 추구를 막은 것인데?

"유치원은 대부분 가족 운영 체제로 이윤을 충분히 갖고 간다. 다만 정부 보조금의 용도에서 규정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학원처럼 운영하겠다면 세제 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안 받아야 한다."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 박 의원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쟁점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을 입증하는 내부 문건을 공개해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는데?

"자유시장경제에서 '신뢰'는 중요하다. 기업의 공시 내용은 속임수가 없어야 한다. 투자자들은 그런 전제에서 투자하는 것이다. 이재용의 불법 승계를 위해 시세 조종이나 부당거래 같은 신뢰가 위배된 것이 확인됐을 때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영장 담당 판사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얼마 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수사 중단·불기소를 권고했는데?

"이건희·이재용 총수 일가의 불공정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리 사회의 공정을 말할 수 있겠나. 대한민국의 법과 원칙은 왜 돈 많고 힘세고 백 있는 사람에게는 고려 대상이 되는가."

―원칙과 당위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다른 죄목으로 한 번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을 테니 앞으로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겠나. 재판을 받게 하는 것보다 삼성 경영을 잘해주는 게 공익에 더 보탬이 되지 않겠나. 아마 검찰 수사심의위는 이런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심의위가 '수사와 기소도 하지 말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증거 자료를 숨기고 폐기하려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건가. 사람을 봐가면서 경제 영향력이 크니까 빼주고, 차기 대통령이 될 거니까 빼주고, 현직 누구이니까 빼주면 법을 지키는 대다수 국민만 억울한 것이다. 이러면 안 된다."

―이재용은 원칙이 반드시 적용돼야 할 본보기인가. 정치판 쪽을 보자. 검찰 조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 계류 중인 현 정권 실세들에게도 법과 원칙이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 적 있나?

"역대 정부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권세가들도 나중에는 감옥을 가고 패가망신을 했지 않나."

재벌 저격수

―박 의원은 '재벌 저격수'로 불리고 있다. 2018년부터 1년 반 동안 '재벌개혁' 국민강연 100회를 진행했다고 들었다. 대학 운동권과 민주노동당을 거쳐왔기에 이런 활동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시대에 진짜 개혁이 필요한 집단은 노동과 공공 부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재벌을 정경유착, 부정부패, 노동 탄압의 주체로 보고 재벌 해체를 주장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니 재벌도 우리 사회의 합의와 제도적 기반에서 구축된 것임을 알게 됐다. 운동권 주장처럼 재벌을 때려잡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재벌 개혁은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과 같다고 본다. 전선을 잘못 자르면 빵 터져서 모두 죽을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좀먹는 분식회계·순환출자 등의 종양을 하나씩 끊어내고 혁신해 나가도록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지금 대기업은 과거에 생각했던 재벌이 아니다.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대기업의 장래를 정치인이 걱정할 게 없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알아서 국제 기준에 맞추고 있고 혁신에도 가장 민감하다. 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해치는 반칙과 불법만 감시하면 된다.

"지금 같은 총수 일가 체제는 기업의 부담이다. 똑똑한 기업 인재들이 국제 경쟁력이 아닌 경영 승계 문제를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머리를 써오지 않았나."

관점이 달라도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서로 배운 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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