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아니 비빔라면 먹을래요?"

  •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20.07.18 06:00

[아무튼, 주말-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30. '봄날은 간다'와 여름날을 위한 비빔라면 이모저모

영화 '봄날은 간다' 이후로 '라면 먹을래요?'는 단순히 라면을 먹지 않겠느냐는 질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질문이 됐다./시네마 서비스
영화 '봄날은 간다' 이후로 "라면 먹을래요?"는 단순히 라면을 먹지 않겠느냐는 질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질문이 됐다./시네마 서비스
“라면 먹을래요?”로 싹 튼 로맨스가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로 시든다. 정확하게 그런 영화는 아니건만, ‘봄날은 간다’는 ‘기승전라면’ 같다는 인상을 남긴다. “라면 먹을래요?”의 메아리가 워낙 큰데다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라면 덕분이다. 영화 개봉 이후 근 20년이 지났건만 “라면 먹을래요?”의 메아리는 아직도 울려 퍼지며 일종의 간접적인 의사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진지하게 들여다 보면 “라면 먹을래요?”는 절대 바람직한 메시지 혹은 전달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은수(이영애)는 상우(유지태)를 향한 감정이 사그라드는 걸 인정하거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만취해서 들어온 자신을 위해 북엇국을 끓여 놓고 깨우는 상우에게 지나칠 정도로 짜증을 내는 등, 간접적으로만 표현한다. 요즘 라면은 예전보다 잘 붇지 않는다. 그래도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니 길어야 5분, 10분 쯤 버티다 결국 불어 터진다. 또한 면발이 멀쩡하더라도 국물이 식어 버린다면 라면은 그 뜨끈하고 얼큰한 생명력을 잃어 버린다.

감정의 면발이 불어 터지고 국물이 차디차게 식어버리기 전에 두 사람은 라면의 얼큰함처럼 솔직하고 가감 없는 대화로 관계를 결판 냈어야 했다. 나이 마흔여섯에 그런 연애를 두 시간 동안 보고 있노라니 유난히 매운 라면을 먹고 입가심하지 못한 것처럼 혀가 아리고 속이 답답했다(참고로 라면의 매운맛은 지용성인 캡사이신 때문이므로 지방이 풍성한 우유나 알코올인 주류로 가셔내야 한다).

답답하게 봄날은 갔지만 라면은 건재하다. 20년이 지나 은수와 상우가 어떤 삶을 살든 라면은 여전히 먹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숙명 아닐까? 봄날은 이미 가고 한여름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이 시점이라면 뜨거운 국물라면보다 비빔라면이 아무래도 제격이다.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인지라 “라면 먹을래요?” 같은 상황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겪을 지 모르겠지만, 오는 여름날을 위해 비빔라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비빔라면의 역사도 짧지 않다. 원조이자 부동의 1위인 ‘팔도비빔면’이 1985년 출시됐으니 사람으로 치면 30대 중반이다. 우리의 라면 취향은 대체로 보수적이라 먹던 것만 먹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많고 많은 라면이 개발 및 출시되지만 ‘신라면’ 같은 스테디셀러에 밀려 잠깐 인기를 얻고 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흰 국물 라면 반짝 열풍을 몰고 온 ‘꼬꼬면’이다.

비빔라면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라서 팔도비빔면이 2020년에도 시장 점유율 60%를 자랑하며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나 또한 라면 취향은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팔도비빔면만 쭉 먹어 왔는데 요 몇 년 사이 불만을 품어 왔다. 비빔장은 끈적거리면서 텁텁한데 면발은 가늘고 힘이 없어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경쟁사에서 조금씩 다른 접근으로 내놓은 제품들이 본의 아니게 연합 전선을 구축해 팔도비빔면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비빔라면은 국물라면보다 조리가 간단하지만 의외로 자잘한 개선의 여지가 숨어 있다. 첫 번째는 면의 온도이다. 사시사철 먹지만 비빔라면은 아무래도 여름 라면이다. 따라서 시원하면 더 맛있지만 국물이 없으니 면발 자체의 온도를 낮추는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더워지면 면발을 헹구는 수돗물의 온도 또한 덩달아 높아지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비빔라면은 미적지근해진다. 다 비벼 놓은 면에 얼음을 더할 수도 있으니 냉각 효과는 떨어지고 간은 궁여지책이다. 따라서 면 헹구는 물에 얼음을 써 온도를 낮추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삶은 면발을 일단 상온의 수돗물로 한두 차례 헹궈준 뒤 얼음물에 담가 마무리해 보자. 조금 번거롭지만 면발이 시원하고 탱탱해져 한결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때 얼음이 녹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면 삶는 물을 불에 올리며 함께 준비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돌얼음을 써도 좋지만 식품 택배에 딸려 오는 얼음팩을 씻어 냉동실에 두면 재활용이 가능해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고명이다. 전통적인 짝인 오이채는 소금에 절이지 않는 한 뻣뻣해 대체로 가는 비빔라면의 면발과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매운 한국식 양념과 잘 어울리는 미역이나 오돌오돌한 질감이 색다른 느낌을 주는 목이버섯이 사실 좀 더 잘 어울린다.

올 여름을 겨냥한 신제품 비빔라면의 장단점을 가볍게 살펴보자. 별점은 5개 만점.

오뚜기 진비빔면: 시장 점유율 2위로 팔도비빔면의 뒤를 바짝 쫓는 진비빔면은 면발이 가늘면서도 한층 힘이 있어 비비기가 한결 수월하다. 김치 맛을 가미한 양념장 또한 약간 묽으면서도 텁텁하지 않아 면발과 잘 어우러진다. 양념장과 함께 들어 있는 참깨고명스프(분말 양념)는 고소한 맛보다는 달콤짭짤함을 불어 넣는 역할을 맡는다. 표방하는 ‘시원한 매운맛’의 ‘시원함’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매운맛이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다.
면발: ★★★★ 양념: ★★★

삼양 열무비빔면: 1991년 출시된 제품이 올 2월 새 단장했다. 열무김치와 배의 맛을 양념장에 담았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열무를 연상시킬만한 별첨 건더기 스프(분말 양념)도 없다는 게 약점이다. ‘불닭비빔면’으로 재기에 성공해서 그런 걸까? 내 기준으로는 매운맛이 선을 넘었다. 몰아치는 매콤달콤함이 음식점 비빔냉면을 많이 닮았다. 면발도 다소 질척해 비빈 뒤의 질감이 개운하지 않다.
면발: ★★★ 양념: ★★

농심 칼빔면: 이름처럼 칼국수 면을 비벼 먹는다. 파스타의 세계가 보여주듯 면발의 폭이 넓을 수록 표면적도 넓어져 양념을 더 잘 품을 수 있다. 따라서 가는 면 일색의 비빔라면계에서는 어색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음식의 원리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결정이다. 양념장은 셋 가운데 김치 맛이 가장 두드러지니, 팔도비빔면과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이들에게 최선의 선택이다.
면발: ★★★★ 양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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