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코로나로 교황과 영국 여왕 그리고 우리가 같아졌다

조선일보
  •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0.07.16 03:10

이탈리아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 여왕·교황의 가상 대화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프랑스에 사는 어떤 남자가 자신의 방을 여행한 글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여행기다, 방 여행기. 남자의 이름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스물일곱일 때였다. 책의 이름은 '내 방 여행하는 법'(장석훈 역·유유출판사). 두 번째 책도 냈는데 역시나 방 여행기다. 바뀐 게 있다면 이번에는 밤에 하는 여행이라는 것. 제목도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역시 장석훈 역·유유출판사)이라 붙였다. 그가 첫 책을 낸 건 1790년이다. 1790년이라는 숫자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건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는 걸 우리가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제, 나는 또 다른 '방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을 영화를 보았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가 만든 단편 '밤 끝으로의 여행'. 7분짜리다. 넷플릭스에서 '코로나'로 검색해 찾았다. '코로나 영화를 만들어주세요'라며 넷플릭스가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단편영화 17편을 모은, '홈메이드' 중 한 편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왜 '방 끝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밤 끝으로의 여행'을 제목으로 붙였는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감독의 집 안 곳곳을 여행 및 탐사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탐미적인 영화 '그레이트 뷰티'를 만든 사람답게 파올로 소렌티노의 집은 그가 탐구해온 미학적 내력을 모은 오프라인 아카이브로도 보였다. 그래서 교황과 영국 여왕을 등장시켜도 어색함이 없었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영국 여왕이 바티칸시국에 있는 교황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은 코로나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면서 격리된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집이 바티칸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도 한 둘의 대비되는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겸손하고 인간적인 데다 유머 감각이 있는 교황과 자신만만하고 솔직하고 역시나 웃긴 데가 있는 여왕의 조합이 말이다. 이 상반되는 캐릭터 때문인지 주고받는 대화가 핑퐁 같아서 '꿀 케미'를 만들어낸다. 이런 식이다. 그려지고 있는 중인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교황은 말한다. "아직 미완성이죠…저처럼요." 그러면 여왕은 말한다. "교황님은 참 불안정한 분이죠." 다시 교황이 받는다. "여왕님과는 다르죠." 그러면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불안은…감히 제게 허락되지 않는 거라서요."

한은형 소설가
한은형 소설가

감독이 코로나에 대한 영화를 만들면서 교황과 영국 여왕이라는 인물을 택한 건 아마 그들이 가진 특별한 신분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데 제일 고독한 사람이라는 신분 말이다. 그들에게는 명성이 있는 대신 자유가 없고, 명예가 있는 대신 불명예가 없어야 한다. 여왕은 이렇게 갇히게 돼서 어떻게 하느냐는 교황의 말에 이미 94년 동안 갇혀 있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인들이 집에 갇혀 자유가 뺏긴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우린 그게 일상이잖아요"라고. 그러자 교황은 말한다. "처지가 같진 않죠. 그 사람들의 비좁은 집과 우리 궁전은 천지 차이니까요."

영화에서 교황과 영국 여왕은 작다. 감독이 10㎝ 정도의 도자기 인형으로 그들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여왕 인형과 교황 인형이 여왕과 교황을 연기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왕 인형과 교황 인형은 그저 여왕과 교황을 상징할 뿐, 목소리를 연기하는 화면 밖의 사람이 여왕 인형과 교황 인형을 여왕과 교황으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테이블 다리는 포르티코(portico·기둥)가 되고, 토분의 식물은 정원이 되고, 스카프의 패턴은 금사를 꼰 휘장이 되고, 싱크대는 수영장이 된다. 여왕과 교황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거대할 수 있는 존재가 한 뼘도 안 되게 작아진 것이다.

집 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개미가 된다면 집이 얼마나 커질까? 그렇다면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이 어떻게 보일까? 소파는? 테이블 다리는? 비틀스의 옐로 서브마린 레고는? 20㎝짜리 고래 피겨는? 내가 작아지면 집은 엄청나게 커지는데, 그렇다면 더 자유로움을 느낄까? 아니면 그저 무시무시할까? 모든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으니 이렇기도 하면서 저렇기도 할 것이다. '방'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방 안에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방 안에서 즐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것만이 방 안에서의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코로나라는,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보내는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안에서 느끼고, 배우고, 살기. 그것만이 2020년의 '밤'을 보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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