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40] 미국 편지통

조선일보
  •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입력 2020.07.16 03:10

충분한 거리를 두고 듬성듬성 배치된 집과 넓은 잔디 마당은 전형적인 미국의 주택가 풍경이다. 햇살이 눈부신 낮의 한적함 속에 집배원이 우편배달을 한다. 혼자 운전하면서 도로변의 편지함에 쉽게 우편물을 넣을 수 있도록 차는 운전석과 핸들이 우측에 있다. 미국 항공우주 방위산업체인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사가 우편배달을 위해서 특별 제작한 그러먼 LLV (Long Life Vehicle) 차량이다. 간혹 주민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편지통에 우편물을 넣고 다음 집으로 향한다. 미국의 편지통은 1915년 우체국의 한 직원이 디자인한 터널 모양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 지금까지 애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나름의 공예 솜씨를 발휘해서 독특한 편지통을 만든다〈사진〉. 디자인은 다소 유치하다. 그래도 비슷한 경관 속에서 자기 집을 차별화할 수 있어서 좋다. 동네 아이들이나 방문객들도 종종 편지통으로 그 집을 기억한다. 하루 수백 호의 집을 방문하며 단조로운 일과를 반복하는 집배원들에게는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이 구조물이 그렇게 정겨울 수 없다. 마치 집에 사는 식구들과 담소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대도시의 아파트 우편함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편지통 사진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영화 '시월애'(2000)에서 안개 속 배경의 선명한 편지통은 시간을 초월한 두 남녀의 사랑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되었다. 편지통은 외부의 소식과 집의 구성원을 연결해 준다. 기다리던 편지를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그 순간을 담는 상자가 바로 편지통이다. 요즈음은 주된 통신 수단이 이메일 등 디지털 매체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물리적으로 배달된다는 것, 그리고 누구로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흥분과 기대를 동반한다. 우편은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원격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통신 수단이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서비스 중 대표적인 것이 우편배달이다. 오늘도 이 소박한 편지통에 시골 집배원의 손길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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