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대통령이 해명하라

입력 2020.07.15 18:08


거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부분 중요 국가 현안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고 대통령에게 가서 끝난다. 입법부에 ‘수퍼 여당’을 구성한 상태에서 사법, 행정, 언론 관련 최고 기관 수장들의 임면권을 대통령이 차지한 권력 구조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으며, 현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관행을 보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입법 사법 행정이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듣는 상황에서 모든 비상조치는 청와대로부터 나오고 청와대로 귀결되는 상황인 것이다. 나룻배가 바닷물에 빠져도 청와대 회의 시간에 추도묵념을 올렸던 대통령이기에 더욱 그렇다.

인구 1000만을 가진 대한민국 서울의 현직 시장이, 그리고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인물이, 그리고 대통령과 사법시험 합격 동기생이며 나이 차이 때문에 대통령을 형님으로 모셨다는 그 인물인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 의혹에 휩싸여 고소를 당한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 현안 보고 사항으로 실시간 중계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라는 것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또 다른 ‘행사’를 준비하고 뛰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긴급 현안은 ‘박 시장 사건’이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 거의 모든 신문은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을 방조’한 부분, 그리고 ‘고소사실 유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성추행 피해자 측이 이미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추가 조사를 촉구하기도 했었다.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피해자 측이 서울시 내부에 성추행 사실과 그 피해를 호소했지만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고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유출된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는 점이다. 성추행 자체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지만, 그러나 남은 두 의혹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고인에 대해서도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조차 마지막 선택이 "무책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 여성은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타인의 존엄을 해치더니 본인의 존엄마저 내려놓았다’면서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라고 박 시장을 책망했다.

피해자의 절규는 박 전 시장의 정무 라인에 의해 막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청 6층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피해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피해 사실을 듣고도 이를 묵살한 인물은 비서실 정무라인의 5급 비서관이었다는 구체적인 취재 결과도 나와 있다. 그리고 박 전 시장과 가까웠던 인물들은 성추행에 대해 "시장님이 그럴 리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증언도 나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강제추행을 방조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자, 이중에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박 전 시장에게 누가 고소 사실을 알렸는가 하는 점이다. 고소 사실을 알린 사람이 애초에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러나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압박을 받은 측면이 있고 사건의 진실이 ‘공소권 없음’으로 묻혀버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시민단체는 어제 고소 사실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경찰과 청와대의 ‘성명 불상(不詳) 관계자’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아직 이름은 모르겠으나 청와대 혹은 경찰청에 있는 어떤 사람이 공무상 기밀 누설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하니 검찰이 그 사람을 찾아내어 처벌해달라는 것이다. 현직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와 극단적 선택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경찰에서는 서울경찰청장, 본청 경찰청장 그리고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이 세 사람에게 가장 중대하고 긴급한 현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청 본청은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고소 사실을 보고는 했지만 박 전 시장에게 유출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도 보고는 받았지만 박 전 시장에게 유출한 적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임순영 젠더 특별 보좌관은 고소가 이뤄진 당일 이미 "서울시 외부로부터 ‘시장님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급하게 시장님 집무실로 달려가서 다른 업무 중이시던 시장님께 ‘실수한 것 있으시냐’고 물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제 이 ‘외부’를 밝혀내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런 사안에 대해 서울시 대변인은 15일 오전 11시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발표’란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단체를 포함한 민관 합동 진상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이라고 말하지 않고 민주당처럼 "피해를 호소하는 직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현재로서는 서울시에 접수되고 조사가 진행된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그러나 "‘피해 호소 직원’이란 용어를 이전에 쓴 적은 없다"고 했다. 민주당과 조율된 표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늘 조선일보 사설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박 시장 피소 사실을 보고받았다면 이 심각한 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결국 문 대통령이 이 문제를 보고 받고 어떤 지시를 내렸느냐가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이 문제 대해 지금껏 아무런 말이 없고 청와대 차원의 진상 조사도 없다. 이 정권은 언론에 사소한 일이 보도돼도 관련 부처 공무원들 휴대폰을 통째로 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 사이에서 벌어진 중대한 범죄 행위에 대해선 모른 척하고 있다. 문 대통령부터 박 시장 문제를 보고 받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밝혀야 한다.’

이해찬 대표는 15일 "피해 호소인이 겪은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피해자’란 표현 대신 ‘피해 호소인’이란 표현으로 사건을 묘하게 비틀고 있다. 그는 사건 초기에 당 차원의 대응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다" "XX자식 같으니라고" 하고 욕설을 내뱉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예의를 모르는 행동이었다. 한편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 당사자였던 민주당의 권인숙 의원은 15일 "여성가족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인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은 15일 "아직 한쪽 당사자의 이야기만 있는데, 객관적인 기관에서 진상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본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귀결된 현직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사건의 전말에 대해 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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