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에 울려퍼진 노래 "보편적인 날들로 돌아가고파"

조선일보
입력 2020.07.14 05:00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15주년

"나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 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

여러모로 잔인한 계절이다.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있는 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여름 정기 공연 '이른 열대야'의 첫 곡은 '잔인한 사월'이었다. 올해로 10년 된 이번 공연의 특징은 관객 모두 마스크를 쓰고 앞뒤로 한 자리씩 건너 앉아 있다는 것. 연인들 많기로 유명한 공연이지만 손잡은 사람은 없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지난 10일 열린 '이른 열대야' 공연에서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아 있지만, 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이마저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지난 10일 열린 '이른 열대야' 공연에서 "코로나 사태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앉아 있지만, 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이마저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스튜디오브로콜리
2005년 데뷔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도 마스크 쓴 관객 앞에서 노래 부르기가 영 어색해 보였다. 드럼 겸 보컬인 류지가 코로나 방지 온라인 문진표에 이름을 잘못 써 현직 간호사인 잔디(키보드)에게 혼난 이야기를 했을 때도 반응이 없었다. 리더 겸 베이스 덕원이 "아마 마스크 안에서 웃고 계실 것"이라며 "이 모든 것도 지나고 나면 모두 특별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울지 마' 등 히트곡들이 연이어 연주됐지만 떼창은 물론 박수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누굴 바보로 아는지/뻔하게 속이 다 보이는 말." '속물들'을 부를 때 멤버들은 "우리 이 정도는 따라 불러도 호흡에 문제없잖아요"라며 호응을 유도했고, '이젠 안녕'을 부를 땐 박수를 유도했다. 그제야 관객들은 소리도 지르고 마스크 안에서 웅얼거리며 따라 불렀다. 멤버들 말대로 "우린 같은 날 같은 공연을 본 운명 공동체!" 간호사 출신 잔디는 "절대 아프지 말자. 그리고 2주 안에 아프게 되면 반드시 신고하자"고 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야외에서 하는 앙코르. 관객들은 1m씩 거리를 두고 줄지어 밖으로 나가 1m 간격으로 금이 그어진 격자무늬 꼭짓점 위에 섰다. 밴드 멤버들은 관객과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마스크를 쓰고 간이 무대에 올랐다. 마스크를 쓴 채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등의 노래를 연달아 불렀다. 보컬 덕원이 마스크 때문에 실패한 부분은 휘파람을 불 때였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고 공연이 막바지에 달하자 밴드가 선택한 마지막 곡은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보편적이었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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