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줄기찬 비 맞으며 줄 서 영웅 보낸 국민들, 대통령은 없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14 03:24

13일 장맛비가 내리치는데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6·25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시민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이 긴 줄을 섰다. 추모객들은 예상 밖의 긴 줄에 서로 놀라면서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정말 '희한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다는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거수경례하는 어르신부터 주변 3040 직장인,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도 보였다. 이 분향소는 정부가 아니라 청년 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 전대협)'가 앞장서고 예비역 단체 등이 힘을 모아 차린 것이다. 1980년대 주사파 전대협을 풍자한 이름인 '신 전대협' 의장은 "정부가 안 하니까 우리라도 (백 장군을) 영웅으로 예우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보내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는 어른들과 학생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20대 대학생은 "6·25 참전 할아버지께 백 장군님 활약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찾아온 2만5000명 국민이 헌화했다고 한다.

동맹국 미국에서도 애도가 잇따랐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고 했다. NSC는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의 전시 회고록'이란 제목의 백 장군 영문 회고록 표지 사진도 올렸다. 전 주한 미군 사령관들도 "백 장군은 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의 아버지" "한·미 동맹을 강화한 진정한 영웅" "세계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백 장군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며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격을 막아냈다. 역사가 짧아 '농민군' 수준이었던 국군을 이끌고 만든 기적이었다. 종전 무렵엔 미 대통령에게 한·미 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설득해 한·미 동맹 체결에도 공을 세웠다. 백 장군을 향한 찬사들은 결코 과하지 않다.

청와대와 여당은 백 장군 별세에 애도 성명 한 줄 내지 않았다. 국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조문하지 않았다. 백 장군을 12만 전우가 잠든 서울 현충원에 모셔야 한다는 각계 요구도 무시했다. 오히려 집권 세력은 백 장군이 일제강점기 20대 초반 나이에 간도특설대에 배치됐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낙인 찍어 매도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근무한 1943년 무렵에는 독립군 부대 대부분이 만주를 떠나 러시아로 이동했다는 연구가 많다. "당시 중공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구경도 못했다"는 백 장군 증언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자녀와 시민분향소를 찾은 한 국민은 "나라의 영웅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정권은 김씨 왕조의 노예가 될 위기에서 국민을 구한 영웅의 별세를 외면했다. 밖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6·25 남침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백 장군을 조금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대신 나서 백 장군 분향소를 차렸고, 줄기차게 내리는 장맛비 속에서도 줄을 선 국민들이 '6·25 영웅'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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