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1만3000명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입력 2020.07.13 03:00

취업비자 체류기간 끝났는데 고국선 코로나로 항공편 막아

"일은 못 하고, 고국에도 못 가고, 회사 숙소에서도 이제 나가야 하니 '난민'이 된 기분이에요. 내 주변에 이런 베트남인이 부지기수예요."

지난 3일 경기 시흥 시화공업단지에서 만난 베트남인 보땀(39)씨는 "월세방 구하러 다니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7년 6월 철강 제조 기술을 배우며 돈을 벌기 위해 4년 10개월짜리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보땀씨는 근무 기간을 채우고 지난 4월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국이 거부했다.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9월 16일까지 모든 국제선 여객 입국 항공편을 중단시켰다. 해외 체류 자국민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출국 티켓을 취소한 보땀씨는 부랴부랴 한국 법무부와 고용노동부에 '50일 체류·고용 연장'을 신청했지만, '체류'만 허용되고 '고용 연장'은 거부당했다. 회사 기숙사에서도 쫓겨나 경기도 월세방에서 지낸다. 보땀씨는 "그동안 매달 생활비 30만원 빼고 나머지 월급 전액을 고향에 보냈는데, 이제는 집에서 돈을 타서 쓰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약 1만3000여 명이 보땀씨처럼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돼 국내에 발이 묶였다. 베트남 외에도 방글라데시가 지난 5월 중순부터 국제선 운항을 모두 중단했고, 파키스탄은 일부 국가에 한해서만 운항을 재개했지만 한국은 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국적별 정확한 현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도 난감해하고 있다.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에게 최대한 허용할 수 있는 체류 기간은 연장 기간을 감안했을 때 총 5년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이 국내에 5년 이상 체류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무작정 선의를 베풀기 어렵다"고 했다.

수년간 함께 일한 직원들의 살길이 막막해지자 이들을 고용했던 중소업체들이 부담을 떠안고 있다. 베트남 북부 출신 응우옌만(35)씨는 요즘 약 5년간 일했던 철강 공장에 붙어있는 숙소에서 지낸다. 공장에서는 더 이상 일하지 못하지만, 회사 측이 '살 곳을 구할 때까지만' 선처해줬다. 회사 관계자는 "거의 5년 동안 함께 일한 직원인데 아무 대책 없이 어떻게 내쫓겠느냐"고 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원장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번 직장으로부터 이탈하면 소재 파악이 어려운 데다, 이들에게 수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될 경우 범죄 등 사회문제로도 번질 가능성도 있다"며 "상대국 정부와 협의해 코로나 음성 판정 후 돌려보낸다든지, 봉쇄가 끝나면 바로 귀국하는 조건으로 고용 연장을 시켜주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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