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마스크 쓴 국민에게 감사하라

입력 2020.07.13 03:14

정시행 뉴욕 특파원
정시행 뉴욕 특파원
미국에서 코로나가 창궐한 이래 4개월간 고작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를 두고 치른 난리를 보면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미국은 현재 누적 확진자 335만명, 사망자 13만7000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아직도 '죽어도 마스크는 못 쓰겠다'는 사람들이 쓰라는 이들에게 총을 쏘고, 마스크 의무화를 논하는 공청회가 시위로 엉망이 된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 잠재력에선 여전히 세계를 압도한다. 이런 나라가 코로나 진앙인 중국이나, 코로나 파동이 휩쓸고 간 유럽보다도 못하게 1차 저리 가라 할 2차 확산세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 국민이 가장 기본적 방역 수단인 마스크 착용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뉴욕처럼 초기에 호되게 당한 곳에선 그나마 마스크 문화가 정착됐다. 그러나 뉴요커들도 센트럴파크나 롱아일랜드 해변, 졸업 축하 파티에선 이 답답한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 '야외니까' '6피트 떨어졌으니까' '젊으니까' 등등 온갖 핑계를 붙인다.

근본적 이유가 뭘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쓰기를 싫어해 국민을 선동했다는 '마스크의 정치화' 이론은 일부만 맞는다. 트럼프는 그런 식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참신한 상상력을 가진 리더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뿌리 깊은 공포나 집착 등 무의식을 간파하고 직관적 방식으로 들춰내는 쪽이다.

뉴욕대 사회행동학 교수 데이비드 에이브럼스도 "이건 정치 영역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부의 우왕좌왕이나 정치적 선동 이전에, 미국인들이 마스크 착용 강제를 '개인의 자유 침해'로 느끼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쓰고 나오긴 했지만, 마스크에 대한 미국인의 심리적 거부감은 아직 높다. 마스크는 대기오염이 심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범죄자·에이즈 환자나 쓰는 것이었다. 또 국내 공급이 적어 비싸고 번거롭다. 보이지도 않는 희한한 전염병 때문에 갑자기 새로운 습관을 들이라니 혼란스러운데, 내가 지지하지도 않는 주지사부터 가게 종업원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니 폭발한다. 마스크는 외국발 공포와 정부의 권위에 굴복해 나의 영역을 포기하는, '미국적이지 않은' 굴욕의 상징인 것이다.

미국인만 마스크를 불편해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도 반년째 고통을 참고 묵묵히 마스크를 써왔다. 정부와 친정부 언론들은 선거 직전 초기 방역 성과에 들떠 'K방역'이란 관급 신조어까지 퍼뜨렸지만, 정말 방역에 성공했다고 여긴다면 말없이 인내한 국민에게 먼저 고마워해야 한다. 정치가 아무리 제 편 감싸기로 나라를 분열시켜도, 적어도 공동체의 생사가 걸린 문제 앞에선 나의 불편을 접어두고 협조할 줄 아는 분별력을 갖춘 그 국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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