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선엽 장군 빈소 조문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의무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13 03:26

향년 100세로 별세한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해 각계 조문과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와 번영은 없었다. 대한민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70년 전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 앞에서 낙동강에 최후 방어선을 친 백 장군은 공포에 질린 병사들을 향해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쏘라"며 선두에서 돌격했다. 그는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막아내며 전세를 뒤집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백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 서울 탈환 때도 최선봉에 섰다.

그는 국군 창설에 참여했고 휴전회담 대표를 지냈으며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 참모총장을 맡으며 군 재건을 이뤄냈다. 한국군을 '민병대' 취급했던 미군도 그에게만큼은 '최상의 야전 지휘관'이라며 존경심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 부임하는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백 장군을 찾아가 전입신고를 하고, 미 육군 보병박물관은 그의 육성 증언을 영구 보존하고 있다. '6·25의 살아있는 전설' '구국 영웅' '한·미 동맹의 상징' 등 백 장군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로도 그의 업적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위대한 호국 원로가 목숨 걸고 지켜낸 조국에서 말년에 받은 대접은 참담하다 못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좌파 집권세력은 그가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복무한 기록만 부각시켜 끊임없이 폄훼, 매도했다. 백 장군은 일제 치하에서 태어났다. 그 세대 사람들에겐 대한민국이란 나라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그 시절을 재단하며 백 장군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한다. 백 장군은 "당시 중공 팔로군과 싸웠고 독립군은 구경도 못 했다"고 하는데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백 장군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남침 공로로 북한에서 중용된 인물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민주당이 백 장군 별세에 애도 논평 한 줄 내지 않은 것은 그냥 나온 일이 아니다.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과(過)는 과, 공(功)은 공"이라며 미화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구한 백 장군의 '공'에는 눈감고 '과'만 억지로 만들어 왜곡하고 있다.

정부는 백 장군을 12만 6·25 전우가 잠들어있는 서울현충원에 모시자는 각계의 요구도 외면했다. "자리가 없다"는 기가 막힌 이유로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한다. 그마저도 여당 일각에서 '친일파 파묘법'을 추진하고 있다니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좌파 단체에선 "백씨가 갈 곳은 현충원 아닌 야스쿠니 신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의 안식처인 현충원에 백 장군이 못 들어간다면 누가 들어가나. 김원봉 같은 인물을 이장할 건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호국 영웅의 마지막 길이 이런 논쟁으로 얼룩지고 있다니 부끄러울 뿐이다.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공직자이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백 장군 빈소에 조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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