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이젠 '당신 탓'이라 할지 모른다

입력 2020.07.11 03:16

운동선수 출신 여당 의원, 느닷없이 '보수 체육계' 탓
야당·언론·미국 '남 탓 타령'… 180석 준 국민 책임론 나올라

정우상 정치부 차장
정우상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고(故) 최숙현 선수 동료와 통화하면서 고인 측에도 책임이 있는 듯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임 의원은 "보수 체육계와 이에 결탁한 보수 언론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반발했다.

여권 인사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보수 언론' 운운하며 남 탓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보수 체육계'까지 들고 나올 줄은 몰랐다. 공을 다루는 방식이나 전술에서 진보·보수가 어떻게 다른지 들어본 적도 없다. 여권 전체에 퍼진 '남 탓 바이러스'가 평생 운동만 했던 임 의원에게 너무 빨리 스며들었다. 정치는 이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적폐 정권' 탓으로 날을 새울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보수 정권 때 좌파 정권 탓만 하던 모습도 겹쳐 보였다. 그러나 집권 반환점을 돌고 나서도, 경제·안보·정치 곳곳에서 물이 새고 하자가 발생하는데도 남 탓만 하는 걸 보니 이건 일시적 증상이 아니라 '만성 질환'이었다.

부동산 문제를 두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규제를 다 풀어 그렇다며 전(前) 정부 탓을 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신천지 압수 수색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며 코로나도 윤석열 검찰총장 탓을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두고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갈등을 조장한 가짜 뉴스 때문이라고 한다. 한명숙 전 총리가 건설업자에게 9억원을 받아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검찰과 법원 때문이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이 북핵도 미국 때문이라고 하는 대목에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노이 노딜'도 볼턴과 일본의 이간질 때문이란다.

'남 탓 타령'으로 집권 5년을 허비하겠다는 우려 속에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여권에 180석을 안겨줬다. 집권 세력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영하고 야당 탓은 그만하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의 '남 탓 바이러스'는 총선 이후에도 종식될 기미가 없이 악성 변종을 낳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을 지시하면서 '국회'라는 말만 15번 했다. 대책 22번에도 왜 집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 좌절하고 분노하는지, 그에 대한 자성(自省)이나 사과는 없었다. '남 탓 바이러스'의 진앙은 청와대였다. 청와대와 여당은 그동안 부동산 폭등 원인을 다주택자로 돌리더니 결국 다주택 문제로 발목이 단단히 잡혔다. 대통령은 대북(對北) 정책이나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부동산 등 문제 있는 정책과 노선을 수정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러다가 다 죽는다. 이제라도 변하자"며 경고등을 켜는 참모는 없고 침묵만이 정권을 지배하고 있다.

나치 시대를 보낸 독일 종교인은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노동조합원을,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내가 공산주의자, 노조원,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 날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침묵과 방관을 참회했다.

정부가 적폐, 야당, 언론, 미국, 일본 탓을 할 때 많은 사람은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께름칙하더라도 남 일처럼 생각했다. 이제 더는 책임을 전가할 공격 대상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이제 누구 탓을 할까. 정권이 궤도를 이탈해도, 소득 양극화가 더 커지는데도, 청년들이 일자리로 아우성치는데도, 왜 채찍 대신 압도적 지지를 해줬느냐고. 우릴 괴물로 만든 건 결국 당신들 아니냐고 탓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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