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얼치기 케인스주의자들의 위험한 실험

조선일보
입력 2020.07.09 03:14

재정 회복 중시한 케인스와 달리 나라 곳간 다시 채울 계획 안 보여

김영진 경제부장
김영진 경제부장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에 막대한 재정이 풀리면서 케인스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케인스는 대공황 해법이었던 뉴딜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경제학자다. 경제 위기 상황에선 민간에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으며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불황으로 극심한 실업을 겪던 1930년대에 제대로 먹혀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세계 각국이 일제히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위기를 넘겼는데, 올해 코로나 위기 국면에 케인스가 또다시 소환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예 '한국판 뉴딜'을 코로나 극복 대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는데, 그가 대공황 타개책으로 채택한 뉴딜 정책을 한국에 이식하겠다는 의지다. 공교롭게도 케인스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들이 한 달여 만에 뚝딱 만들어낸 5조원짜리 한국판 뉴딜은 초·중등학교에 낡은 PC 보급하는 걸 디지털 뉴딜로 포장하고, 그린 뉴딜은 지원 대상 선별 기준도 확정되지 않은 설익은 사업이었다. 전직 경제 장관이 "제대로 된 사업으로 1조원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가"라고 한 말이 실감 났다. 돈을 퍼다 쓰기 위해 사업을 급조하다 보니, 호박에 줄 그어 수박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위기도 아닌 상황에서도 나랏돈을 제멋대로 뿌려온 걸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소득이 늘어난다는 터무니없는 소득 주도 성장의 부작용으로 청·장년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자, 2조원 넘는 재정을 동원해 노인 일자리로 채워넣은 게 문재인 정부다. 정부 돈을 태워서라도 소득 주도 성장을 해보겠다는 3년여간의 경제 정책은 실패로 드러났는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되살리려는 분위기다. 코로나 사태를 내세워 눈치 안 보고 나랏돈 풀기로 작심한 것이다. 모든 걸 코로나로 엮어서 1·2·3차 추경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총 59조원짜리 돈 보따리를 새로 꿰찼다. 올해 512조원짜리 수퍼 예산을 불과 반년 만에 571조원짜리 수퍼울트라 예산으로 둔갑시켰다.

여권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미 마른 수건을 짜고 있다'며 2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해 "창고지기는 곳간을 열고 닫을 권한이 없다"는 막말을 하고,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곳간 열쇠 갖고 있다 보니 곳간 재원이 자기 것인 줄 오해한다"며 홍 부총리를 폄훼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데 퍼주기 사업만 늘리는 통에 곳간이 비어 올해 찍어야 할 적자 국채가 100조원에 육박해 사상 최대가 됐다. 자식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무리 위기가 닥쳤다고 하지만 미래 세대를 생각해 빚 관리를 해야 하고, 빚이 너무 늘어날 것 같으면 세금을 더 걷어 현 세대도 일부 부담하는 게 재정의 기본이다.

케인스는 불황 때엔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풀어야 하지만,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을 흑자로 되돌려놔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나라 곳간을 다시 채울 계획은 없고, 쓸 궁리만 하는 한국 케인스주의자들과는 180도 다르다.

용처나 재원 조달 방법도 없이 일단 수표부터 끊어놓고 보는 문 정부의 습성이 가장 걱정이다. 한 해 3차례 추경은 48년 만의 드문 일이었다. 176석의 압도적인 여당의 무소불위를 감안하면 59년 만의 4차 추경 기록도 곧 세울 것 같다. 얼마나 나라 곳간을 더 허물고, 나랏빚을 더 늘려나갈지만 남았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