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격조 있는 그의 음악으로… 우리도 '시네마 천국'서 살았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07 03:00

伊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 별세

'석양의 무법자' 속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권총이 불을 뿜기 전에 어김없이 울려퍼졌던 주제가. '미션'에서 광활한 밀림을 배경으로 가브리엘 신부가 불던 오보에의 경건한 선율. '시네마 천국'에서 장난꾸러기 꼬마 토토가 자라서 영화감독이 된 뒤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 장면을 보면서 눈물짓던 마지막 장면의 테마곡….

이탈리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2006년 로마에서 음악회를 지휘할 당시의 모습.
이탈리아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2006년 로마에서 음악회를 지휘할 당시의 모습. 모리코네는 탄탄한 작·편곡 실력을 바탕으로 500여 편의 영화·드라마 음악을 작곡했다. /AFP 연합뉴스
스크린을 주옥같은 멜로디로 장식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93)가 6일 별세했다. 외신들은 모리코네가 낙상으로 인한 대퇴부 골절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그가 남긴 영화와 드라마 음악만 500여 편에 이른다. 70여년간 전 세계 음반 판매량은 7000만장. 이 가운데 한국에서도 200만 장의 음반이 팔렸다. 2011년을 포함해 수차례 내한 공연도 가졌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와 가내 직물업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첫 음악 스승은 아버지였다. 여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2세에는 로마의 음악 명문인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들어갔다. 입학 후에는 작곡·합창 음악·트럼펫 등 클래식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했다.

졸업 이후 클래식 작곡과 편곡을 계속하면서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음악으로 반경을 조금씩 넓혔다. 1964년부터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전위적 현대음악) 작곡가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동시에 팝 스타 폴 앵카와 샹송 가수 프랑수아즈 아르디 등의 히트곡도 발표했다. 이처럼 실험적인 현대음악과 대중적인 팝 음악을 가리지 않은 폭넓은 유연성과 진취성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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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석양의 무법자' 속편(1966), 미션(1986), 시네마 천국(1988)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1929~1989)와의 만남은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둘은 로마에서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죽마고우(竹馬故友)'. 1964년 레오네는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서 모리코네를 작곡가로 기용했다. '레오네 감독-이스트우드 주연-모리코네 작곡'의 황금 조합은 1965년 '석양의 무법자'와 이듬해 속편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극을 뜻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신조어(新造語)도 그즈음 탄생했다.

1980~1990년대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작곡 위촉이 쏟아졌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언터처블'(1987)이나 배리 레빈슨 감독의 '벅시'(1991)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레빈슨은 "작곡가들이 피아노 앞에 앉아서 멜로디를 구상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리코네는 그렇지 않았다. 선율이 떠오르면 악기 없이 그 자리에 앉아서 썼고, 오케스트라 편곡도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격조 있는 관현악 편곡을 통해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를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모리코네 영화 음악의 매력으로 꼽힌다.

영화음악의 전설로 불렸지만 정작 아카데미 음악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1979년 처음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로 올랐지만, 정작 37년 뒤인 2016년에야 '헤이트풀 에이트'로 '지각 수상'했다. 백발에 두꺼운 안경을 낀 노장도 트로피를 받아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래미상도 수 차례 수상했고, 2009년에는 그래미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그의 활동 무대는 전 세계였지만, 평생 고국 이탈리아에서 거주했다. 모리코네는 "대부분의 작품은 못났지만, 언제나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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