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러다 美·中 바둑판 '돌'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01 03:16

트럼프가 韓·호주·인도·러시아 G11 멤버 찍은 건 中포위 전략
美·中 충돌은 홍콩에서 본격화… 언제까지 北만 쳐다볼 건가

안용현 논설위원
안용현 논설위원
바둑을 중국어로 웨이치(圍棋)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싼(圍) 돌(棋)을 다루는 게임이란 뜻이다. 키신저 박사가 중국의 외교 안보 전략을 바둑에 비유한 적이 있다. 중국은 주변의 '빈 곳'을 향해 움직이면서 포위를 뚫고 역으로 상대를 에워싸는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을 놓고 바둑을 뒀다. 중국 공산당은 농촌을 장악한 뒤 도시를 포위하는 전법으로 국민당을 꺾었다. 주변 세력에 포위당하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1950년 6·25 참전으로 동쪽의 미국과, 1962년 국경 분쟁으로 서쪽의 인도와, 1969년 우수리강에서 북쪽의 소련과, 1979년 남쪽의 통일 베트남과 전쟁을 치렀다. 미·중 수교도 소련 견제 목적이 컸다. 시진핑이 내건 육·해상 실크로드 역시 바둑판을 중국 주변에서 유럽·아프리카까지 확대하는 전략이다. 중국은 14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주변에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 없다. 바둑을 둘 필요가 없었다. 대신 특정한 적을 바로 공격하는 체스를 뒀다. 체스가 단기전이라면 바둑은 장기전이다. 그랬던 미국이 최근 중국에 대해 '바둑 전략'을 쓰는 모습이다. 중국을 뺀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와 반중(反中) 군사 블록을 짜려는 것은 전부 중국 포위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G7(주요 7국) 정상회의를 G11으로 확대하자며 한국·호주·인도·러시아를 콕 찍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중국을 사방에서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러시아와는 7월 시 주석이 직접 푸틴 대통령을 만나 팔을 당길 예정이다. 호주와 인도에 대해선 때리기에 나섰다. 호주산 보리에 5년간 70%가 넘는 반덤핑 관세를 매긴 데 이어 호주산 일부 쇠고기도 수입을 금지했다. 호주산 보리와 쇠고기의 최대 고객이 중국이다. 얼마 전 중·인도 국경에서 중국군이 '쇠못 몽둥이'로 인도군 수십 명을 때려죽인 것도 미국 쪽으로 기울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일 수 있다. 6월 30일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키자 미국은 홍콩에 대한 수출 특혜 등을 없애는 수(手)로 맞섰다. 미·중은 홍콩을 넘어 충돌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기존 방식은 이제 효력을 다했다. 문 정부 출범 직전 핵심 안보 당국자는 "과거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는 미·중·일이 전부 달려와 귀동냥을 했다"며 "북핵 문제도 남북 관계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 3년간 정부는 북한만 쳐다보며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것을 창조했다. 미·중이 지금처럼 부딪치지 않았다면 이런 구상도 일부 통했을지 모른다. 남북 모두 운신의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 양쪽의 '선택' 압박이 예사롭지 않다. 이달 초 주미 대사가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고 했다. 그러자 미 국무부가 "한국은 수십년 전 (미·중 가운데)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며 곧바로 반박했다. 5월 말 주한 미군이 성주의 낡은 사드 장비를 교체하자 중국은 '사드 3불(不)'을 들이대며 즉각 반발했다. 대미·대중 외교 3년의 결과가 샌드위치 신세다.

한반도 주변 판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정부는 여전히 북한 타령이다. 특히 북핵은 우회로가 없다. 지금 북이 남북 연락사무소를 박살 내고 군사 도발을 위협하는데도 '비핵화'란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미국 때문"이라며 핵을 움켜쥔 김정은 세력과 '우리 민족끼리'를 하려고 한다. 그러는 순간 미·중 바둑판의 일개 '돌'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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