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의연, 힘겨워한 길할머니 후원행사 끌고다녀

입력 2020.06.30 18:13 | 수정 2020.06.30 18:42

치매 할머니한테 후원금 받고도 "우린 모른다"

2019년 1월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왼쪽)할머니와 윤미향 당시 정의연 이사장(현 민주당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2019년 1월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왼쪽)할머니와 윤미향 당시 정의연 이사장(현 민주당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박상훈 기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가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치매 약을 복용 중”이라고 정부에 보고하면서 한편으로는 길 할머니로부터 유언장과 후원금을 받았다.

정의연은 본지의 이러한 문제 제기에 29일 한경희 사무총장을 통해 “길 할머니는 정식으로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이 없으며, 유언장은 우리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길 할머니 유언장은 ‘김복동의 희망’ 이라는 정의연 관련 단체에서 받은 것이니 정의연과 직접 관련은 없다는 주장이다.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과 고(故) 손영미 정의연 마포쉼터 소장이 공동 대표로 있다.

◇[팩트체크]길원옥 할머니는 치매가 맞을까?

정대협(정의연 전신)은 2017~2019년 여성가족부로부터 매년 피해자 쉼터 운영비로 1500만~3000만원을 지원받고, 활동 내역과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한 보고서를 여성가족부에 제출해왔다.

본지가 미래통합당 박성중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대협은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최소 2016년부터 알고 있었다.

정대협은 2017년 보고서에 “(길 할머니가)2016년 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나 기억력에 자꾸 문제가 생김” “12월 8일 병원 진료 결과 기억력에 조금씩 문제가 생겨 치매 약의 단계를 올림”이라고 기록했다. 최소 2016년부터 치매 증상을 인지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정의연 측은 “치매를 진단 받은 것은 아니고, 예방과 지연 차원의 약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8년, 2019년으로 갈수록 길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명확해 진다. 2018년에는 “잊어버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잘 걷지를 못함” “밤에는 많은 꿈을 꾸어서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아 새벽녘에 바깥으로 나가기도 하고, 일어나서도 꿈에서의 일을 현실처럼 이야기 함” 등의 기록이 나온다.

2019년에는 "병원 간다는 이야기를 10번쯤 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어디 가' 하면서 또 물어보심" "○○○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자꾸 잊어버리고 인지를 못 하심" "저녁을 잘 드시고 운동 후 잠이 드신 것을 확인했는데, 오후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소장님 나 왜 밥 안 주냐'고 하시며 방으로 들어오심"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이 같은 기록을 확인한 여의도성모병원의 한 신경과 교수는 “그날 들은 것을 그날 잊어버린다는 묘사 등을 보면, 진단 체계상 ‘중등도 퇴행성 치매’로 보인다”면서 “행동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길 할머니, 정의연 행사 참석 후 고통 호소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치매 이외에도 파킨슨병 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정의연은 이러한 길 할머니를 정의연 모금 행사 등 대외 활동에 여러 차례 대동했다.

2017년 보고서에는 길 할머니가 파킨슨 병으로 인해 물 마시는 것조차 힘들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2018년에는 “누운 상태에서 일어나지를 못해 의사 선생님 두분과 함께 일으켜 세우는데 아주 힘들어 함”, 2019년에는 “아침에 일어난 후 걸음을 한 발자국도 떼지를 못해 할머니께서 119를 불러달라고 하심” 등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길 할머니는 정의연 대외 활동에 여러 번 참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보름새 3번의 대외활동에 참석하기도 한다. 2018년 8월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관련 국내전시 개막식’, 같은달 14일 ‘이룸센터 73년의 기다림, 마침내 해방 심포지엄’ 같은달 15일 ‘세계연대집회’ 등이다. 보고서에는 한 여름인 8월에 “더운 날씨에 수요 집회에 참여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길 할머니는 정의연 행사 참석 후 고통을 호소했다. 보고서에는 2018년 10월 24일 “수요 시위에 참석 후 밤에 많이 편찮아 하면서 힘들어 하였으나 잘 이겨냄” 같은해 11월 18일 “정의기억연대 후원의 밤에 참석하시고 힘드셨는지 밤에 꿈을 꾸고 헛소리를 많이 함. 다음날 병원에서 검사를 하였으며, 검사결과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유지상태라 함” 등 기록이 있다.

◇정대협, 길 할머니 치매 알면서 유언장, 수천만원 받았다.

이 같은 기록을 정대협이 직접 기록해 여가부에 보고하면서도, 정대협은 양아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길 할머니로부터 유언장을 받고 이를 영상으로 남겼다. 길 할머니의 치매와 건강 상태가 상당히 악화된 2019년 5월이다.

현재 영상은 삭제됐지만, 유언장은 볼 수 있다. ‘김복동의 희망’ 사이트에 올라온 길 할머니의 유언장에는 ‘저와 관련한 모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을 정대협 윤미향 대표에게 맡긴다’는 내용과 함께, 말미에 ‘2019년 5월 3일’이라고 적혀있다.

길 할머니의 양아들인 황모(61) 목사는 2019년 당시 유언장의 존재를 몰랐다. 1년 후에야 유튜브에서 유언 영상을 발견했다. 황 목사가 고(故) 손영미 쉼터 소장에게 ‘왜 아들도 모르는 유언장이 있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손 소장은 당시까지 양아들로 입적이 안돼있던 황 목사에게 “서둘러 양아들로 입적하라. 그러면 유언 문제가 해결된다”고 요구했다는 것이 황 목사 측 주장이다.

정의연이 길 할머니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받은 시기도 2017~2019년이다. 2017년 11월 길 할머니 계좌에는 ‘국민 성금’ 1억원이 입금됐고, 이 돈은 1시간 4분 만에 모두 빠져나갔다. 정의연은 이 중 5000만원은 길할머니가 정의연에 기부했고, 나머지 5000만원은 할머니가 직접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정의연이 우간다에 이른바 ‘김복동 센터’를 건립한다는 명목으로 길 할머니에게 500만원을 받아갔다. 우간다 현지 주관단체 아찬 실비아 대표가 본지에 “여성 쉼터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후원금을 받았지만 ‘김복동 센터’ 조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정의연이 돈을 모으는 도구로 나를 사용한 것 같다. 역겹다”고 했던 그 사업이다.

◇정의연 “유언장은 우리와 관련 없는 일” “할머니 숭고한 뜻 왜곡 말라”

정의연 한 사무총장은 ‘길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는 상황에, 양아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유언장을 받은 것이 타당했다고 보시냐’는 본지의 문제 제기에 “(유언) 동영상이란 것을 정의연 사무총장인 저도 본 적이 없다. 정의연과 관계없다”고 해명했다.

본지는 이에 길 할머니의 유언장이 올라와 있는 ‘김복동의 희망’ 홈페이지의 캡처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자 한 사무총장은 “김복동의 희망에서 올린 것이네요. 정의연과는 관계 없는 일이며 정의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라고 답변했다.

본지가 “유언장에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전 정의연 이사장)의 이름이 나오고, 손영미 소장님이 ‘김복동의 희망’ 대표이신데 손 소장님도 정의연과 관련이 없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한 사무총장은 “개인의 행위 하나 하나가 모두 정의연의 공식 행위나 입장은 아니지요. 동영상이 김복동의 희망 유튜브에 올라간 것이니 김복동의 희망에 문의하십시오”라고 답했다.

이어 고령의 길 할머니를 정의연 모금 행사 등 여러 대외 활동에 대동하고, 길 할머니에게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받은 문제에 대해서도 정의연은 “길 할머니의 기부는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악의적인 의도로 폄훼하는 일을 중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