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운 기자의 영화를 맛보다] 퍽퍽한 인생, 꼭꼭 씹다보면

조선일보
입력 2020.06.30 05:03

'조조래빗'의 흑빵

이혜운 기자
※이 글엔 영화 '조조래빗'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엄마는 안 먹네."(조조)

"배가 안 고프네. 나중에 먹을게. 난 와인이나 조금 더 마실래."(로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독일. 엄마 '로지(스칼릿 조핸슨)'와 단둘이 사는 열 살 소년 '조조(로먼 그리핀 데이비스)' 집에 먹을거리가 풍부할 리 없다. 식탁에 놓인 건 레드 와인 한 병과 시꺼먼 빵 두 조각. 엄마 로지가 무언가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조조는 "전 오늘 특히나 배가 고파서요. 엄마 것도 제가 먹을게요. 낭비하면 안 되니까"라며 엄마 몫의 빵 두 조각까지 집어먹는다. 그 빵은 엄마 로지가 집에 숨겨두고 있던 죽은 딸 친구인 유대인 소녀 '엘사(토머신 매켄지)'를 위해 남겨둔 몫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엄마가 아껴둔 독일 흑빵 ‘로겐브로트’를 덥석 집어 먹는 조조.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엄마가 아껴둔 독일 흑빵 ‘로겐브로트’를 덥석 집어 먹는 조조.

조조가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먹는 빵은 독일 호밀빵 '로겐브로트(Roggenbrot)'다. 색깔이 짙어 '흑빵'이라고도 부른다. 빵이지만 달콤함, 폭신함, 쫄깃함 따위는 없다. 반죽을 일주일 정도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살짝 신맛이 난다. 호밀이 70% 이상 포함돼 퍽퍽하다. 한 유럽인은 "독일 빵과 프랑스 빵을 한입 먹으면, 왜 독일 사람들은 항상 인상을 쓰고, 프랑스 사람들은 표정이 밝은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프랑스와 전쟁하는 중에 검은 호밀빵을 두 프랑스인 포로에게 주었더니 그들이 즉시 탈출했다고 기록했다.

독일에 호밀빵이 발달한 것은 춥고 비가 많고 일조량이 적은 날씨 탓에 밀보다 호밀 재배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면서 영양이 함축된 음식도 필요했다. 독일빵에 곡식 낟알이나 씨앗이 그대로 들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을 열고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하다. 독일 사람들은 이 빵에 치즈와 햄, 오이 등을 올려 먹는다. 삭힌 청어나 훈제 연어 등을 올려 카나페처럼 먹기도 한다. 이땐 보통 맥주보다 와인을 곁들인다. 독일 수퍼에서는 5유로(약 6800원)만 있어도 좋은 와인을 마음껏 살 수 있다.

요즘엔 호밀빵이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다. 섬유질이 풍부해 소화가 오래 걸리고 포만감이 크기 때문. 조조와 로지가 날씬한 것이 이 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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