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암투병… 그녀의 香이 더 짙어졌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30 05:00

英 왕실이 사랑한 '세계적 향수 제조가' 조 말론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이가 있다. 향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 말론(57)이 그렇다. 영국 런던의 한 작은 가게 구석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향수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향신료인 너트메그(육두구)부터 생강, 블랙베리, 바질, 얼그레이 등 당시 향수로는 잘 쓰지 않았던 천연 원료를 배합해 차별화된 향을 조합해 냈다. 조 말론의 대성공 이후 '니치 향수'('틈새'를 뜻하는 니치를 붙인 말로, 소수를 위한 프리미엄 향수) 분야가 급성장했다. 향 위에 향을 더하는 '향기 레이어링(겹쳐입기)'도 그가 유행시켰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 결혼식 때 왕실 공식 하객 선물로 지정됐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작사(CBE) 훈장을 받았다.

최근 자신의 향수 브랜드 '조 러브스'와 패션 브랜드 자라(ZARA)와의 협업을 통해 '이모션스 컬렉션'을 선보인 조 말론을 이메일로 만났다. 조 말론은 "향으로 추상화를 그려내듯 향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와 그 향에 깃든 추억을 생각하면서 향을 조합한다"고 했다.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 역시 그 연장선. "빈티지 가죽의 도나 카란 재킷, 회색 스팽글 장식의 디자이너 앨리스 템퍼리의 드레스, 그리고 랄프 로렌의 까만색 랩 원피스 등 제가 소장한 의상과 좋아하는 아이템에서 향기를 떠올리죠. 어떤 옷을 누가 입을지, 어떤 개성과 목소리, 이미지를 갖고 있을지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세계적 향수 제조가인 조 말론은 “매일 일어날 수 있고,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올림픽 사상 최초의 단거리 4관왕인 제시 오언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같이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 향수 제조가인 조 말론은 “매일 일어날 수 있고,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올림픽 사상 최초의 단거리 4관왕인 제시 오언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같이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 러브스 인스타그램

승승장구한 듯하지만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였다. 도박 중독인 아버지, 생계를 책임지다 신경쇠약으로 투병한 피부관리사 어머니. 난독증이었던 자신은 15세 때 학교를 중퇴했다. 10대 때부터 생업 전선에 나선 그가 발견한 재능이 남들보다 예민한 후각.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덕에 남다르게 사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잘 못했어도, 원하는 향을 즉각 떠올려 구성하고 조합할 수 있었어요." 가난은 열정으로 극복했다. "저는 항상 가게 주인으로서의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굴하지 않는 정신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창의성에 감사해 했죠. 경쟁이 무서웠던 적은 없어요. 오히려 경쟁은 목표에 집중해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해주었지요."

1994년 문을 연 그의 가게는 해외 유명 백화점 등에 입점했고, 1999년 세계적 화장품 그룹 에스티로더에서 인수했다. 조 말론의 직책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기존 직원을 모두 고용하는 조건이었다. 기쁨을 만끽할 순간, 그의 인생이 또다시 송두리째 흔들렸다. 2003년 유방암이 발병했다. 후각이 자산이었던 그가 항암 치료로 음식을 먹을 수도, 향을 맡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는 이겼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2011년 '조 러브스'라는 브랜드로 새롭게 출발했다.

"제게 생존(survive)이란 사랑(love), 가족(family), 그리고 웃음(laughter)을 의미해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사랑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 웃음, 사랑을 좋아하죠. 이것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더욱 뼈저리게 깨달은 건 추억과 기억은 절대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것, 가족과 더불어 일상을 더욱 즐기고 만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 말론의 향수 뿌리는 팁] 비비지 말고, 톡톡 치세요

향수 사진
/자라

조 말론은 손목에 향수를 뿌린 뒤 비비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향수를 뿌리고 양 손목을 비비는 경우가 많더군요. 풍성한 향을 무너뜨립니다. 뿌린 뒤 그냥 말리는 게 제일 좋고. 손가락으로 톡톡 쳐 줘도 좋습니다." 향수는 몸 어디에다 뿌려도 되지만, 뒤통수 부분 머리카락에 뿌려주면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그는 "자몽과 시트러스(감귤류)의 신선한 향을 선호하는 편인데, 오전에는 시트러스 향으로 상쾌하게, 오후에는 좀 더 묵직한 향기로 갈아입는다"고 했다. 우아한 꽃향기, 남성들이라면 우디(woody) 계열이 관능적이다.

덥고 습기 찬 여름엔 향수를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뿌려줘야 향이 달아나지 않는다. 여행용 작은 사이즈를 상비해두면 좋다. 그녀는 피곤할 때는 시원한 느낌의 향수를 다리와 목 뒤에 뿌려준다고 덧붙였다. 특히 향기를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보디 젤, 로션, 향수를 같은 계통의 향(꽃향기, 과일 향기 등)으로 통일해야 좋다. 화장품의 오일 성분은 향수의 발향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향수가 닿는 피부는 깨끗해야 한다. 향수를 구입할 땐 종이보다는 피부에 직접 뿌려 20분이 지난 뒤의 향을 맡고 골라야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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