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70년 국립극단의 새로운 실험

조선일보
입력 2020.06.30 05:00

'다시 보고 싶은 연극 1위'… '조씨고아' 영상 제작 현장 가보니

"온라인 중계 보고 '꼭 극장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해요. 관객 머리 좀 나오게! 리액션도 담아주세요!"

지난 26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예술극장.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하 '조씨고아') 무대 위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던 연출가 고선웅이 객석의 촬영감독을 향해 외쳤다. 국립극단은 개막 예정일이던 25일에 이어 이날 이틀째 '조씨고아' 공연의 온라인 중계용 녹화를 진행했다. 국립극단이 영상 제작만을 위해 공연을 따로 한 것은 7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 코로나 사태로 국공립극장이 문을 닫고 예술 단체들이 멈춰 서며 벌어진 낯설고 서글픈 풍경이다. 비록 녹화용 공연이지만, 완전 무관중이었던 전날과 달리 이날 객석엔 20여 명이 띄엄띄엄 앉았다. 고선웅이 "관객이 꼭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덕이다.

장군 ‘도안고(장두이·오른쪽)’는 서쪽 변방에서 온 영험한 개 ‘신오(김명기·왼쪽)’를 훈련시켜 라이벌 권력자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흉계를 꾸민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도안고에 의해 멸족당한 조씨 집안의 마지막 자손을 둘러싼 죽음과 복수의 이야기다.
장군 ‘도안고(장두이·오른쪽)’는 서쪽 변방에서 온 영험한 개 ‘신오(김명기·왼쪽)’를 훈련시켜 라이벌 권력자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흉계를 꾸민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도안고에 의해 멸족당한 조씨 집안의 마지막 자손을 둘러싼 죽음과 복수의 이야기다. /국립극단
공연 전 무대 뒤에서 만난 그는 "관중 없이 치른 어제 공연은 공연이 아니라 박제였다"고 했다. "눈물이든 웃음이든 관객들 반응과 무대 위 배우가 교감해야 희로애락을 겹치며 감정을 쌓을 수 있어요. 관객도 없다시피한데 영상에 소리 끼어든다고 리액션도 못 하게 하니 어제는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 돼 버렸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고선웅은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 무대와 객석을 꿈틀대며 이동하는 에너지 같은 연극의 본질적 경험을 중시하는 연출가. 그의 요청에 따라 단원과 배우 가족 등 20여 명이 급히 '임시 관객'으로 호출됐다.

객석에 설치된 카메라는 1층 객석 중앙 3대, 좌·우측 각 1대, 좌측 1열 클로즈업 카메라 1대 등 총 6대였다. '조씨고아'는 늘 명동예술극장 3층 객석까지 전 석 매진되는 작품. 드문드문한 객석에 카메라가 주인인 양 자리를 차지한 모습도 낯설다. 무거운 분위기는 공연 직전, 국립극단 김철순 PD가 관객들 앞에 서서 말을 건네며 풀렸다. "마음껏 웃고 환호해주세요. 충분한 리액션은 녹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커튼콜 때 우렁찬 함성과 박수 부탁합니다!" 객석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26일 온라인 중계 영상 제작을 위해 연출가·배우들과 객석의 촬영팀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26일 온라인 중계 영상 제작을 위해 연출가·배우들과 객석의 촬영팀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근 2년 만에 다시 만난 '조씨고아'의 감동은 예전 그대로였다. 춘추전국시대,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장두이)'가 문신 '조순(유순영)'을 모함해 그의 일족 300명을 멸살한 뒤 벌어지는 죽음과 복수의 이야기. 마지막 조씨 핏줄 '조씨고아(이형훈·홍사빈)'를 살리기 위해 무고한 이들이 잇따라 죽어가는 1막의 격정은 객석을 통곡의 바다로 만든다. 애끊는 고통이 휘몰아칠 때조차 짧은 폭소로 객석이 자주 일렁이는 것도 이 작품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조씨고아'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 "쥐면 펴야 하고 이화(異化)가 있어야 동화(同化)도 있다"는 고선웅 연출관이 빚어낸 정수(精髓)다. 복수의 클라이맥스가 휩쓸고 지나간 2막의 끝, 주인공 '정영'은 관객을 향해 말한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 무대, 한바탕 짧은 꿈.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커튼콜엔 우렁찬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객석 관객이 20여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함성이었다. 막 내린 뒤 극장 밖에선 연출가 고선웅이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역시, 공연엔 관객이 있어야 해!"

'조씨고아'는 작년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연극'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올해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공연으로 편성됐다. 현존하는 모든 연극 중 가장 보고 싶은 3편을 적는 주관식 설문에 총 4052명이 참여했고, 언급된 공연 1357편 중 '조씨고아'가 압도적 1위였다. 공연 일정은 본래 7월 26일까지. 국립극단은 "할 수만 있다면 단 하루라도 무대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온라인 중계는 본 공연 폐막 뒤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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