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실·꿈 구분 못하는 길 할머니에 유언장 쓰게 한 정의연

조선일보
입력 2020.06.30 03:00 | 수정 2020.06.30 12:09

여가부에 낸 건강상태 보고서엔… 2017년 "치매약 단계 올림" 기록

지난해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 정의기억연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2016년 이전부터 치매를 앓아왔다.
지난해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2) 할머니. 정의기억연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2016년 이전부터 치매를 앓아왔다. /고운호 기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가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가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정부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을 전후해 '저와 관련한 모든 일들을 정리하는 것을 정대협 윤미향 대표에게 맡긴다'는 길 할머니의 유언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길 할머니가 국민 성금으로 받은 1억원 가운데 500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고, 아프리카에 이른바 '김복동센터' 건립 비용으로 500만원을 기부한 것도 모두 정대협 관리 하에서 치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대협은 2017~2019년 여성가족부로부터 매년 피해자 쉼터 운영비로 1500만~3000만원을 지원받고, 그에 따른 활동 내역과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기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최종 결과보고서'를 여성가족부에 제출해왔다.

29일 본지가 미래통합당 박성중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2016년 이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정대협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가 유언장을 작성한 2019년에는 이미 치매 정도가 심했다. 보고서에는 "병원 간다는 이야기를 10번쯤 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어디 가' 하면서 또 물어보심" "○○○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자꾸 잊어버리고 인지를 못 하심"이라고 나와 있다. 또 "가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계시다 '소장, 나무 좀 가져오라'고 하여 무슨 나무냐고 하니 '닭발을 삶아야 하는데 지금 밖에 솥 안에 닭발 삶으려고 준비해두었는데 고양이가 달려들까 걱정된다' 등등"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여 무엇 하시냐고 했더니 '실 작업한다'고 하시고, 오후에는 '우리 엄마 어디 갔느냐'고 찾으심" "저녁을 잘 드시고 운동 후 잠이 드신 것을 확인했는데, 오후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소장님 나 왜 밥 안 주냐'고 하시며 방으로 들어오심"이라고 적혀 있다.

이런 상태일 때 길 할머니가 유언장을 작성하고 윤 대표와 대화하는 모습이 담긴 유언 동영상이 제작돼 유튜브에 올라왔다. 사진 속 할머니의 유언장 작성 일자는 '2019년 5월 3일'로 나타나 있다. 현재 해당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삭제된 상태다. 또 그해 6월에는 "길 할머니가 아프리카 우간다에 짓는 '김복동센터'에 보태라며 500만원을 기부했다"고 정의연은 밝혔다.

정대협 보고서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2016년 이전부터 치매였다. 2017년 보고서에는 길 할머니에 대해 "2016년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나 기억력에 자꾸 문제가 생김" "12월 8일 병원 진료 결과 기억력에 조금씩 문제가 생겨 치매 약의 단계를 올림"이라고 적혀 있다. 바로 그해 11월 길 할머니 계좌에 국민 성금 1억원이 입금됐고, 1시간 4분 만에 모두 빠져나갔다. 5000만원은 정의연에 기부한 것이며, 나머지 5000만원은 할머니가 직접 썼다는 게 정의연 주장이다.

길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했다. 파킨슨병을 앓았고, 2017년 말에는 갈비뼈 골절상도 입었다. 혼자서는 걷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보고서에 적혀 있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길 할머니는 정의연의 대외 활동에 여러 번 참석했다. 길 할머니가 행사 참석 후 고통스러워한 대목도 나온다. "2018년 10월 24일 수요시위에 참석 후 밤에 많이 편찮아 하면서 힘들어하였으나 잘 이겨냄" "11월 18일 정의기억연대 후원의 밤에 참석하시고 힘드셨는지 밤에 꿈을 꾸고 헛소리를 많이 함. 11월 19일 병원에서 검사" 등이다.

정대협 보고서에 나타난 길 할머니의 증상에 대한 기록을 본 여의도성모병원 한 신경과 교수는 "길 할머니는 돈 계산이 어렵고 길 찾기가 어려워서 혼자 생활이 안 되는 '중등도 치매'로 보인다"며 "행동과 판단 약 90%가 적절치 못해 행동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박성중 의원은 "심신이 미약한 고령의 길 할머니를 후원 모금 행사에까지 데리고 다니는 게 정상인가"라며 "사실 은폐에 급급한 정의연은 물론이고 여가부에도 관리 부실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연 측은 '치매 상태의 할머니에게 기부금을 받는 행위가 타당하냐'는 본지의 질문에 "할머니께서는 정식으로 치매 등급을 받으신 적이 없다"면서 "할머니의 뜻을 치매 노인의 결정으로 폄훼하지 말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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