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북한도 댓글 달 수 있는 인터넷 포털

입력 2020.06.30 03:16

한글 익숙한 北·中 네티즌들, 마음 먹으면 여론 개입도 가능

신동흔 문화부 차장
신동흔 문화부 차장

"대북 단체는 세금 조사하고 탈북자들은 북송 처리해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지,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공익에 우선할 수 없음에…."

북한이 대북 전단을 극렬 비판하고 있을 때 한 포털 사이트에서 발견한 글이다. 대북 삐라를 다룬 기사 바로 아래에 붙은 댓글인데, 글쓴이는 '세금 조사' '북송 처리' '나라의 기강' '강단 있게' 같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어휘를 사용했다. 여기에 1만3000건 넘는 '좋아요'가 붙어 베스트 댓글 자리에 올라 있었다. 누군가 링크(좌표)를 대량으로 공유한 이른바 '차이나 게이트' 사례는 아닌지 잠시 의심했다. 내친김에 포털 운영사에 아이디를 알려주고 사용자 국적을 물었지만, "개인 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혼란스럽기만 했다.

차이나 게이트는 중국이 조선족과 자국 유학생을 동원해 댓글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여권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한다는 음모론이다. 솔직히 국내 정치권 연계설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글 사용자가 많은 중국과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국내 여론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유명한 중국 댓글 부대 '우마오당'은 코로나, 홍콩 시위 이후 중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에선 중국산 방역 마스크를 지원한 뒤 '중국에 감사한다'는 분위기를 만들려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추모 시위에선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개입해 시위가 폭력적으로 흐르도록 부추겼다는 의혹이 나왔다.

사실 이 분야의 원조는 러시아다. 2016년 러시아의 위장 컨설팅 기업 IRA는 미국 시민운동 단체 명의로 페이스북 페이지 470개를 개설한다. 이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올린 집회 공고를 보고 텍사스에서 열린 흑인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이 다른 용무로 같은 곳에 와 있던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가짜 정보를 유포시켜 미국인 간의 갈등과 충돌을 조장했다.

러시아의 행위는 자유세계의 공론장에 침투해 혼란을 야기하는 바이러스에 비유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여론 공작을 분석한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저서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원제:The Road To Unfreedom)'에서 "러시아 정부는 서방의 민주주의가 자기 나라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서방 국가에 혼란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홍콩 시위를 탄압하던 중국이 미국서 흑인 인권 시위가 격렬해지자 옳다구나 하고 이를 체제 선전에 활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트위터는 최근 홍콩 시위 비판이나 중국 정부 찬양에 활용된 가짜 계정 17만개를 찾아내 삭제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유럽연합도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러시아가 이민자 문제 등 가짜 논쟁거리를 만들어 투표율을 낮추고 후보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세력들이 자유세계가 누리고 있는 인터넷의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국내 상황이다. 그동안 사이버 사령부가 북한 등 외부 세력에 맞서 인터넷 심리전을 맡아왔지만, 이번 정부에서 되레 정치 관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네이버·다음에서 트위터처럼 가짜 계정을 찾아내 삭제하는 대응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외부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는 방역은 코로나뿐 아니라 여론에도 필요한데,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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