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120] 갚아야 할 꿈

조선일보
  •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2020.06.29 03:10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갚아야 할 꿈

자정의 비는
가로등이 하얗게 빛나는 곳으로 몰려간다.
멈칫멈칫 내린다.

거기 있을 것이다.
느릅나무 이파리 뒤에 숨어
우는 민달팽이
푸른 울음, 기다란 한 줄이.

내밀어 더듬는 뿔에
당신의 붉은 꿈이 걸린다.
엎치락뒤치락 갚아야 할 당신의 꿈이.

―강인한(1944~ )

장마라고 합니다. 비가 잦습니다. 저 아랫녘에서 올라오지요. 그리고 어디까지 올라가 소멸하는지는 모릅니다. '3·8' 이북 이야기는 잘 전해지지 않으니까요.

빗소리에 잠 못 드는 분들 많습니다. 좋아서, 서글퍼서, 아파서…. '빗소리 때문…' 이게 제일 정확한 이유. 비는, 저 하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니까요. 오늘과 내일 사이(자정) 빗소리에 구름보다도 많은 생각이 몰려옵니다. 그중 '당신의 꿈'이 걸립니다. '당신'은 아마도 우리의 '아버지'일 듯싶은데 혹 잃은 '연인'일까요? '나'는 현재 후드득거리는 빗발 속 '느릅나무 이파리 뒤에 숨어 / 우는 민달팽이'와 같은 소시민입니다. 빗소리 곁에 있으니 저절로 생각(뿔)이 내밀어져요. 둘러보니 '당신의 붉은 꿈'과는 다른 존재죠. 하여 '당신의 꿈'을, 그저 더듬어 볼 뿐이죠. '갚아야 할 꿈'이라고는 하지만 갚을 수 없어요. 달팽이 뿔로 무엇을 치받을 수나 있겠어요! '뿔' 거두고 귀 기울여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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