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選民 DNA' 가졌으니 惡할 수 없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29 03:16

윤미향·조국 등 무조건 옹호… '운동권은 무오류' 신화 盲從

배성규 정치부장
배성규 정치부장

얼마 전 386 운동권 출신의 여권 핵심 인사를 만났다. 윤미향 의원(정의기억연대 전 대표) 얘기가 나오자 버럭 역정부터 냈다. "왜 무고한 사람을 폄훼하고 괴롭히느냐"고 했다. "30년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한길을 걸어온 윤 의원은 결코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용수 할머니가 울분을 터뜨리고, 갖은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우리처럼 이쪽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사익(私益)을 취하는 따위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동권은 태생적으로 악(惡)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그는 "너희들이 뭘 아느냐. 언론이 잘못됐다"고 화살을 돌렸다.

작년 조국 전 장관 사태 때도 비슷했다. 여권 핵심 인사들은 "조국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원래 선(善)한 사람"이라고 감쌌다. 사모펀드 투자와 자녀 입시 부정의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동지가 그런 악인으로 매도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 한명숙 전 총리 논란도 다르지 않다. 여당 지도부는 '검찰의 진술 외압 의혹'을 내세워 감찰 조사를 밀어붙였다.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난 사안인데도 "한 전 총리는 억울하다"고 했다. 자기들 대모(代母)가 뇌물 전과자로 남는 것을 묵과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선민(選民)의식'의 결정판은 청와대였다. 2018년 말 특감반 사찰 의혹이 터지자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DNA)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유별나게 순결한 DNA를 지녔다는 얘기로 들렸다. 작년 말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때도 마찬가지다. 첩보 제공자가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이란 사실이 밝혀졌지만,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 하명 수사는 없었다.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을 사실처럼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5·18과 세월호 역사왜곡처벌법에선 선민의식이 서슬 퍼런 독선(獨善)으로 바뀌었다. 자기들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악(惡)으로 몰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 역사교과서에 그처럼 반대했던 사람들이 역으로 상대에게 몽둥이를 들고 나선 것이다.

386 운동권 출신 인사는 "도덕적 우월감이 죄의식을 없애버렸다. 반성할 줄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민주화·시민 운동을 한 정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자만에 빠져 자신들의 부정과 비리, 불공정엔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뇌물 사건이 터졌을 때 친노(親盧) 핵심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정치적 동지가 준 용돈인데 뭐가 문제냐?" 친노 후원자였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에 대해서도 "정치 발전을 조건 없이 지원하는 아름다운 독지가"라고 했다.

한 전 총리 돈은 대가성이 없고, 조 전 장관 입시부정은 눈감아도 될 수준이고, 윤 의원 의혹은 관행이라고 치부한다. 아무리 죄를 짓고 잘못을 해도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 원래 '선한 사람'이라고 완장을 두르면 무조건 면죄부를 받는 세상이 된 듯하다. 여권 내부에서도 "친문(親文)은 특권 계급이냐"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 176석이란 절대 의석을 얻은 여권은 숫자의 힘으로 '정의(正義)'조차 바꾸려는 태세다. 자기들이 하면 정의요 법이요 진실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우월감과 독선에 빠져 오만해진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엔 선민도, 유별난 DNA도 없다. 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현 집권 세력이 맞서 싸웠던 과거 정권이 어떻게 됐는지 새겨 보길 바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