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베스트샵을 조용히 찾은 손님, 알고보니 LG그룹 회장

입력 2020.06.27 11:00

29일 취임 2주년을 맞는 구광모 대표
문자, 이메일로 임직원과 격의없이 소통

구광모 LG그룹 회장/그래픽=김성규
구광모 LG그룹 회장/그래픽=김성규


최근 서울 강서구에 있는 LG전자제품 유통채널인 ‘LG전자 베스트샵’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이 손님은 건물 1~2층에 위치한 고객 체험형 가전공간과 LG하우시스와 연계한 인테리어 숍인숍, 3층 서비스센터 등 매장 곳곳을 살펴봤다. 이 손님은 코로나 사태로 힘든 시기임에도 제품 판매와 A/S, 배송 등 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매장을 떠났다.

이 손님은 29일 취임 2주년을 맞는 구광모 LG대표. 그는 직원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베스트샵 담당 임원과 책임급 실무자 3~4명과 함께 이 매장을 찾았다. 당시 매장에는 고객들이 적지 않았지만, LG그룹 회장의 방문을 눈치챈 사람은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 이메일로 소통하는 회장님

구광모 LG 대표의 지난 2년간의 리더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용주의’와 ‘진정성’이다. 그는 불필요한 형식과 격식은 과감하게 없애고, 진심을 갖고 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을 대하면서 LG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에 LG도 군살은 줄고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미래형 조직으로 체질이 한 층 개선됐다. 또 진심이 담긴 LG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배가됐다.

“대표로 불러 주십시오”
구광모 대표는 2018년 6월 29일 LG그룹의 지주사인 ㈜LG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직후 임직원들에게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달라 당부했다. 회장이라는 직위보다는 지주회사 대표라는 직책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고, 겸손하게 전문경영인들과 소통하며 경영을 해 나간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또 구 대표는 취임 당시에도 별도의 취임식이 없었고, 인재초청 행사에서는 딱딱한 정장이 아닌 캐쥬얼한 재킷 안에 폴라티를 받쳐 입고 참석해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인사를 나눴다.

구광모(가운데) LG 회장이 2019년 8월29일 대전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연구 개발 책임자들과 차세대 OLED 시장 선도를 위한 핵심 공정 기술인‘솔루블 OLED’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LG
구광모(가운데) LG 회장이 2019년 8월29일 대전에 있는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연구 개발 책임자들과 차세대 OLED 시장 선도를 위한 핵심 공정 기술인‘솔루블 OLED’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LG

또 문자나 이메일 등으로 임직원과 격의없이 소통한다. LG그룹 내에는 구 대표의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는 임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무식 풍경도 바꿨다. 지난해에는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의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새해를 시작했고, 올해는 아예 온라인 시무식으로 전환해 신년사를 담은 영상을 전 세계 25만명의 임직원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회의문화도 철저히 실용적으로 변화시켰다. 기존 400 여명이 한꺼번에 모여 분기별로 개최하던 임원세미나는 ‘LG포럼’이라는 100명 미만 규모의 월례 포럼 형태로 바꿨다.

◇인재는 나이, 출신 따지지 않고 등용

구 대표는 인재는 나이, 출신 등을 따지지 않고 등용했다. LG그룹의 모태인 LG화학의 CEO로1947년 창립 이래 첫 외부 인사인 신학철 3M 부회장을 선임하는 등 LG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기 위해 과감하게 외부인재를 영입했다. 지난해 연말 인사서도 LG생활건강의 34세 퍼스널케어 사업 총괄 심미진 상무 등 106명의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 또 새로운 시도와 변화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력 있는 젊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100여명의 미래사업가 후보를 선발했다. 구 대표는 지난해 10월 미래사업가 후보들과 만찬을 함께 하며 용기있는 도전을 응원했다. 올해도 “부족한 여건에서도 고객을 위한 최선의 솔루션을 찾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바로 사업가의 일입니다” 등의 격려 메시지를 전했다.

LG전자는 지난달 토론토AI 연구소장으로 캐나다 이동통신사 1위 벨의 AI팀을 이끈 경험을 가진 케빈 페레이라 박사를 영입하고, 지난해 12월에는 AI전문가인 미국 USC 컴퓨터공학부 조셈 림 교수를 영입해 인공지능연구소의 영상지능 연구를 맡기는 등 미래 성장 분야의 세계적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진심 담아야 울림 있다”

지난 달 코로나사태로 매년 한 자리에 모여 고객 가치 혁신 사례를 공유하고 격려하던 ‘LG 어워즈(Awards)’ 행사 개최가 어려워지자, 구 대표가 포상과는 별도로 44개 수상팀 리더들에게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살뜰하게 챙겼다. “LG의 혁신과 도전은 우리가 가진 기술과 아이디어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감동을 느끼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고객의 니즈가 더욱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지만 이러한 고객 가치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객을 위한 의미 있는 도전이라면, 결과에 상관없이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구광모 드림”

수상팀 중 한 팀의 리더였던 LG디스플레이의 정 모 팀장은 5월말 구광모 대표 명의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정 팀장의 팀에서 더욱 몰입감을 주는 프리미엄 가상현실(VR) 구현을 위해 기존 한계를 뛰어넘는 초고해상도 OLED패널 제작을 시도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아직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고객을 위한 의미 있는 시도로 ‘LG 어워즈’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축하하고 응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구 대표는 사회문제에도 진심을 가지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공기청정기 1만대 추가 공급, 문제없을까요?”
LG전자 가전사업을 총괄하는 송대현 H&A사업본부장은 지난해 3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구광모 대표였다. 구 대표는 전국 학교에 ‘공기청정기 1만대를 지원할 계획’이라며 어느 기종이 가장 적합한지, 추가 생산에 어려움은 없을지 등을 꼼꼼히 물었다고 한다. 사상 최악의 고농도 미세먼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전국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공기청정기 적기 공급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한 구 대표가 기업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학생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줄여주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LG는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 LG전자의 대용량 공기청정기 1만 1백대를 신속하게 무상 지원했다.


2018년 5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서 당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영정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조선일보 DB
2018년 5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에서 당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영정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조선일보 DB


구 대표는 선대회장의 뜻을 반영해 제정된 ‘LG 의인상’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챙기고 있다. 취임 이후 수상 범위를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서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선행과 봉사를 한 시민들까지로 확대했다. 95세의 고령에도 34년 동안 서울 영등포구 무료 급식소에서 주5일 하루도 빼지 않고 봉사를 이어 온 정희일 할머니, 응급 상황에 처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17년간 한국 응급의료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고(故) 윤한덕 센터장 등 사회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며 큰 울림을 준 분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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