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로 신동빈 지명"… 20년前 쓴 신격호 유언장 나왔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25 03:49

유품 정리 중 도쿄 사무실서 발견

지난 1월 별세한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가 차남인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한 자필 유언장이 24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롯데그룹은 24일 "신 창업주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일본 도쿄의 사무실에서 자필 유언장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20년 전 작성된 이 유언장에는 '사후(死後)에 한국·일본 등 전체 롯데그룹의 후계자를 신동빈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언장 내용은 24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 직후, 신 회장이 일본 롯데의 주요 임원들과 가진 화상회의에서 직접 공개했다. 신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CEO로서 일본 롯데를 실질적으로 책임 경영하게 됐고, 후계와 관련한 신 창업주의 뜻도 분명히 확인됐다"고 말했다.

신격호 자필 유언장 공개

신격호 창업주의 유언장은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의 집무실 금고에서 발견됐다. 지난 1월 19일 별세 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유품 정리가 늦어지면서, 최근에야 확인됐다. 유언장은 법정상속인인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회장,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유미 전 롯데호텔 고문의 대리인이 참석한 가운데 이달 11일 일본 가정법원에서 개봉됐다.

10년前 롯데타워 모형 앞에 두고… - 2010년 10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가운데) 당시 회장이 차남인 신동빈(왼쪽) 당시 부회장과 롯데월드타워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듬해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신동빈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10년前 롯데타워 모형 앞에 두고… - 2010년 10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가운데) 당시 회장이 차남인 신동빈(왼쪽) 당시 부회장과 롯데월드타워 모형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듬해 신격호 회장은 총괄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신동빈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롯데지주

유언장에 신 창업주는 한자와 일본어, 영어로 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후계·상속 문제 등은 정리가 끝난 상황이어서 이 유언장 때문에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또 공증을 받지않아 법적 효력도 없다.

신 창업주는 2000년 3월 4일 작성한 유언장에 '사후의 롯데그룹(일본·한국 및 그 외 지역에 있어서 모든 롯데 그룹을 말한다)의 후계자로서 차남인 신동빈(시게미쓰 아키오)을 지명한다'고 적었다. 유언장에는 또 '장남 신동주(히로유키)는 롯데그룹 각 사의 실무 및 인사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을 것' '신동주는 연구·개발에 참여하라' '(신 창업주의) 형제들은 그룹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신동주·신동빈은) 이후 롯데그룹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전 사원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롯데 측은 밝혔다.

신 창업주는 유언장에 자신의 지분·재산 배분에 대한 내용은 남기지 않았다. 신 창업주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회사 지분을 자녀들에게 넘겨, 현재 그의 명의로 된 지분은 거의 없다.

한국 롯데지주 지분 3.1%(보통주),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0.4% 등을 가지고 있다. 이 지분을 포함해 예금·토지 등 재산은 법(상속 유류분)에 따라 네 자녀에게 나누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부인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는 법적으로는 사실혼 관계여서 법정 상속인은 아니다.

신동빈, 명실상부 한·일 롯데 '원톱'

이번 유언장으로 지분 변동은 없지만,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후계에 대한 아버지의 유지(遺旨)를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5년 신동주 회장이 아버지를 앞세워 동생인 신동빈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하려 시도하면서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당시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은 신 창업주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 양측의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 유언장은 신 창업주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이어서, 후계 지명에 관한 논란은 가라앉을 전망이다.

24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동주 회장이 낸 신동빈 회장 이사 해임안은 부결됐다. 이어서 열린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일본 롯데를 이끌어온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이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신동빈 회장이 그 자리에 선임됐다.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이사회 의장도 겸임하면서 한·일 롯데그룹을 모두 실질적으로 이끌게 됐다. 신동빈 회장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 만큼 선대 회장님의 업적과 정신 계승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롯데그룹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형제 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신동주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최대 주주인 '광윤사'의 지분 '50%+1주'를 가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홀딩스 지분은 4.0%에 불과하다. 2대 주주인 종업원지주회(지분 27.8%)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경영권을 장담하기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CEO로서도 확실한 경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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