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위 한달째… 백악관 앞에 '흑악관 자치구역' 등장

입력 2020.06.25 03:00

고착화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역사적인 인물·공간에 분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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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을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촉발한 미국 내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던 초기 시위 양상이 역사 청산 전쟁으로 변하고 있다. 고착화된 불평등과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역사적 인물과 공간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전직 대통령의 동상 파괴가 시도되고 있고, 시위대는 백악관(白堊館·White House)에 대응한 '흑(黑)악관(Black House) 자치구역'을 선포하기도 했다.

폭스5뉴스 등 워싱턴 지역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일과 21일 사이 시위대는 백악관 바로 앞에 만들어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 광장 주변에 텐트를 치고 자치구역을 선포하려 했다. 시위대는 백악관 앞 세인트 존스 폴 교회 인근에 '흑악관(Black House) 자치구역'이란 나무 현판을 세웠다. 주변엔 바리케이드도 쳤다.

자치구역을 선포한 시위대는 백악관 앞에 세워진 미국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에 쇠줄과 밧줄을 묶어 끌어내리려 했다. 경찰은 최루액 분사기로 이들을 해산시켰다. 잭슨 전 대통령은 미국 2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인물이지만, 미국 원주민을 쫓아내도록 한 '인디언 이주법'을 제정해 그동안 논란이 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트위터에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수도 워싱턴은 '자치구역'이 될 수 없다"며 "시도한다면 그들은 심각한 물리적 힘에 부닥칠 것"이라고 썼다. 이후 워싱턴 경찰이 대거 동원돼 '흑악관 자치구역'으로 들어왔고, 시위대의 천막은 모두 철거됐다.

'흑악관 자치구역'은 미 서부 워싱턴주(州) 시애틀시에 지난 8일 만들어진 '캐피톨 힐 자치구역'을 모방한 것이다. 시위대는 이 지역 6개 블록을 장악한 뒤 경찰서를 '민중본부'로 만들었다. 이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경단을 구성해 지금껏 독자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21일 자치구역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경찰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등 치안이 급속하게 악화됐다. 이에 제니 더컨 시애틀 시장은 22일 이 지역에 다시 경찰이 투입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자치구역의 '절대 사수'를 외치고 있어 대규모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애틀의 치안 불안이 계속되자 10억달러 규모를 굴리는 투자회사인 '스메드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본사를 시애틀에서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옮기기로 했다고 23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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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광장에서 경찰들이 흑인 시위자를 연행하고 있다. 뒤편으로 ‘흑악관 자치 구역(Black House Autonomous Zone)’이라고 쓰인 나무 현판이 보인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는 이날 이 주변을 공권력의 개입을 막는 구역으로 선포했지만, 대거 동원된 경찰에 의해 해산되거나 체포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 자연사박물관 앞에 80년간 서 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기마상도 인종차별 반대 시위 속에 최근 철거가 결정됐다. 이 기마상이 인디언과 흑인을 시종으로 거느리고 있는 모습인 데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러시모어산(山)도 표적이 됐다. 이 산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등 전직 대통령과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에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내가 지켜보는 한 (철거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콜럼버스의 동상은 미국 각지에서 공격을 받고 있고, 미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옹호했던 남군 사령관인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또한 철거가 추진 중이다. 리 장군은 비록 남군 사령관이었지만 탁월한 전략과 인품 때문에, 전쟁 직후 노예 폐지를 추진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과거 미국에서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을 이끄는 리더 중 하나인 작가 겸 시민운동가 숀 킹은 22일 트위터에 "백인 예수와 백인 마리아가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와 벽화, 조각을 철거해야 한다"고 올리기도 했다. 예수는 까무잡잡한 피부색의 중동 사람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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