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소비자는 기업 입장을 묻는다

입력 2020.06.22 03:12

박순찬 실리콘밸리 특파원
박순찬 실리콘밸리 특파원
전 미국을 강타한 흑인 인종차별 시위로 글로벌 기업들도 바빠졌다. 사회문제에 민감한 '밀레니얼·Z 세대'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뿐 아니다. 내부 직원들까지 회사에 입장을 요구했다. 지난달 말부터 애플과 나이키,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소셜미디어에 애도와 지지를 밝히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기부를 실시하고, 인종차별을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잇따랐다. 미국 국적 기업들뿐 아니라 벤츠와 이케아, 레고 등 본사를 세계 각국에 둔 비(非)미국 글로벌 기업들도 동참했다. 젊은 세대들은 내가 사는 브랜드, 내가 일하는 회사가 사회문제에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어디 있었을까. 세계 6위 글로벌 브랜드인 삼성전자는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매출의 90%가량을 해외에서 거둔다. 미국은 그중에서도 최대 시장이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번질 때까지 삼성은 침묵을 이어갔다. 급기야 소비자들이 '미국 삼성' 소셜미디어 계정에 "평등에 대한 삼성의 입장은 뭐냐"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운동을 지지하느냐"고 직접 묻기 시작했다. 심지어 애플·구글·아마존·삼성의 인공지능 음성비서에게 입장을 물어본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흑인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열흘 뒤인 지난 4일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링크트인에 한 문장짜리 입장문을 올렸다. "우리는 모든 이가 존중받는 포용적인 직장과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여러 생각을 듣고, 배우고, 나누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흑인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언급 없이 최대한 에둘러 쓴 듯했다. 덕분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 글로벌 1~5위 브랜드(애플·구글·아마존 등) 모두 CEO가 전면에 나서 '인종차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적극 대응한 것과 대비되는 행보였다. 물론 그들은 미국 기업이고 삼성은 한국 기업이다. "물건만 잘 만들면 됐지, 남의 나라 일에 시시콜콜 입장을 밝혀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삼성은 이번에 짧은 입장문 내는 걸 두고도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반도체로 가장 큰 수익을 거두는 B2B(회사재) 기업이라 미·중 갈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현 처지에서 또 다른 민감한 문제에 발을 들이기 꺼렸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고객들에게 국적은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삼성은 매일 쓰는 스마트폰이나 TV의 브랜드 이름일 뿐이다. 만약 삼성이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당당히 밝히고 미흡했던 다양성을 보강하고 한국 중심 문화를 바꿔가겠다는 노력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앞으로 계속 닥칠 문제다. 소극적으로만 나간다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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