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154] 포기의 심리학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20.06.20 03:14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우연히 티브이를 켰다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름에 출시할 노래 주제를 정하는 장면을 봤다. 한 가수가 '포기하지 마'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니 다른 가수가 '그건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며 '포기해'가 낫다는 말을 덧붙였다. '포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강연을 하면서 알게 된 역설적 사실이 있다. 가장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강연을 듣는 계층이 노년층이라는 것이다. 꿈과 희망이 넘쳐야 할 청소년 대상 강연이 실은 활기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찍이 특목고를 포기했고, 수학을 포기했다. 단계적 포기에 익숙해진 아이 중 수능을 포기한 아이도 적지 않고, 극단적으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정서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웹소설이나 웹툰 주제 중 멸망 후 신종족이 등장하고, 시간대를 자유롭게 옮겨가는 타임슬립이 많은 건 포기의 정서 밑에 깔린 무의식이다. 죽어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부모가 실은 나를 정말 포기할까 봐 두려운 아이의 무의식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신종족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

포기가 나쁜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포기하느냐 하는 문제다. 7년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 남자에게 두렵겠지만 포기하는 게 용기일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날부터 점검해 봐야 한다. 타조는 아무리 노력해 날갯짓해도 갈매기처럼 날 수 없다. 코끼리가 점프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타조가 갈매기보다 하등하거나, 코끼리가 호랑이보다 열등한 게 아니다.

이때 '포기'는 결코 인생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나 자신으로 살자는 뜻이다. 시대 정서에 따라 '포기하지 마'와 '포기해'를 말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한계'를 직시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열정을 오해하면 종종 냉정을 무시하게 된다. 무엇보다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목표가 생기는 게 또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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