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섭 노래 듣는데, 왜 제가 아련하죠?"… '올드 K팝'에 빠진 외국인들

조선일보
입력 2020.06.16 05:01

한국어·모국어로 8090가요 부르는 경연 프로 '탑골 랩소디' 우승자들

"이상하죠? 살아본 적도 없는데, 1990년대 한국 노래를 들으면 향수가 느껴져요."

스페인 출신의 모델 라라 베니토(Benito·26)는 드라마 '응답하라1988' 팬이다. 그는 "서울의 옛날 골목길 풍경에서 휴대폰도 없이 뛰어놀던 마드리드 흙길이 떠오른다"면서 "그 시절 한국 노래 특유의 '노스탤직(향수 어린)'한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라라는 지난달 케이블TV 'E채널'의 '탑골 랩소디: K-POP도 통역이 되나요?'에 출연해 첫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의 팔구십년대 가요를 외국인들이 한국어와 자기 모국어로 번갈아 부르는 경연. 그가 부른 '잊지 말아요'(백지영)는 방송 2주 만에 100만 조회 수를 넘겼다. 스페인어로 부른 2절 덕분에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서 "무슨 노래냐"며 궁금해하는 댓글이 달리고, 한국의 칠레 대사관에서 소식을 궁금해할 정도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한국을 찾은 그는 2017년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서울에 살며 '라라랜드'라는 유튜브를 운영한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을 천연덕스레 흥얼거리는 그는 "'나 돌아갈래', '더 심플한 시간으로 갈래' 이런 느낌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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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를 영어·스페인어·중국어로 불러도, 이들이 부른다면 오리지널의 느낌 그대로 남을 것이다. ‘탑골 랩소디:K-POP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받은 찐룬지(왼쪽부터), 라라 베니토, 아넬 노넌이 서울 덕수궁 앞에서 춤추는 모습. /이진한 기자

'탑골랩소디' 2주 차 우승자인 미국인 아넬 노넌(Nonon·26)은 "한국 가요를 들으면, 엄마 아빠와 집 청소하고 빨래하던 일요일 풍경이 떠오른다"면서 "어른들이 틀어 놓은 스티비 원더, 보이즈투맨을 듣던 꼬마 시절로 돌아간다"고 했다. 3주 차 우승자인 찐룬지(39)가 가수의 꿈을 키우며 베이징(北京)의 허름한 식당 주방에서 접시를 닦으며 흥얼거린 노래는 변진섭의 노래들이다. 그는 "한국 노래들은 정말 아름다운 시절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출신 국가도, 피부색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만 이들은 저마다 한국에서 가수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 찐룬지는 2016년 '보이스 오브 차이나' 톱4까지 진출한 현역 가수. 활동 무대는 중국이지만 한국인 아내, 세 살 아들과 경기도 평택에 산다. 백지영 임창정 등 한국 가수들이 중국 무대에 설 때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통역을 하는 등 한·중 음악계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그는 "설에 한국 들어왔다가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중국어 버전 한국 노래를 유행시키고 싶다"고 했다. 탑골랩소디에선 이소라의 '제발',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불러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노넌은 16세 때 미국 경연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에 나가 최종 예선까지 진출한 신동. 제니퍼 로페즈, 스티븐 타일러, 랜디 잭슨 세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9세였던 2013년 'K팝 월드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K팝 그룹 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경연 무대에서 부른 곡도 '거위의 꿈'. 그는 "말은 다르지만, 우리는 음악이라는 훨씬 보편적인 언어를 쓸 줄 알기 때문에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왜 '탑골'이라고까지 불리는 '올드 K팝'에 빠져드는 걸까.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의 1990년대는 고도성장을 기반으로 한국 문화가 처음으로 번성기를 맞았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유토피아적 감성이 피어난 시절"이라며 "그 보편적 감수성이 음악에 녹아들면서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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