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불 지핀 언론인… "글은 끓어오르는 피로 써야 한다"

조선일보
입력 2020.06.16 05:00

[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33] '언론자유 영웅' 최석채 주필

조선일보 논설위원·편집국장·주필을 지낸 언론인 최석채. 별세 3년 전인 1988년의 모습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편집국장·주필을 지낸 언론인 최석채. 별세 3년 전인 1988년의 모습이다.
4·19 혁명 일주일 뒤인 1960년 4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 앞에 군중이 몰려들었다. 조선일보사가 4·19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 발코니에 설치한 확성기에서,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담화가 흘러나왔다.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최석채(1917~1991)는 회고했다. "감격적인 것은… 수십만 인파가 일시에 조선일보 '바르코니'에 선 우리를 향해서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준 그 순간이었다." 최석채와 함께 눈물을 쏟으며 만세를 부른 사람 중에는 영국 런던타임스의 서울 특파원 찰스 하그로브도 있었다. 1952년 이승만 정부의 발췌개헌 파동 당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독설을 날렸던 기자다. 이제 그 장미꽃이 막 피어나려는 것을 보고 벅찬 감격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최석채는 그보다 한 달여 전인 3월 17일 자 석간 1면 사설 '호헌(護憲) 구국(救國) 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를 써서 펜으로 4·19 혁명의 불길을 지폈다. "과연 이것(3·15 부정선거)이 선거인가?… 전체 국민과 더불어 투쟁하는 국민운동의 전개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을 자각한다." 자유당 정권의 심장부에 비수를 꽂는 추상같은 필치에 놀란 경무대에선 그를 구속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고, 외신 기자들은 잡혀가는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에 진을 쳤다.

대쪽처럼 곧은 지조를 지녔고, 부정(不正)을 보고 쓰지 않고는 못 배겼던 '반골 언론인' 최석채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언론계 '대부'로 존경받았다. 2000년 5월 IPI(국제언론인협회)는 최석채를 한국인 중 유일하게 '20세기 언론 자유 영웅' 50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하며 "그는 모든 형태의 부정에 반대하는 탁월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했다.

1960년 4월 26일 태평로에 운집한 군중이 조선일보 사옥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특별 담화를 듣고 있다. 최석채는 ‘군중 앞에서 영국 기자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1960년 4월 26일 태평로에 운집한 군중이 조선일보 사옥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특별 담화를 듣고 있다. 최석채는 ‘군중 앞에서 영국 기자와 함께 만세를 불렀다’고 회고했다. /조선닷컴

최석채는 대구매일신문 주필이던 1955년 9월 자유당 정권을 비판한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를 쓴 뒤 30일간 옥고를 치렀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문제 인물로 찍힌 그를 받아준 곳이 조선일보사였다. 별명이 '시골 무사'였다. 작은 키에 유행에 동떨어진 옷차림으로 촌티가 나는 데다 타협을 모르는 고집쟁이란 뜻이었다. 그는 충무로 헌책방을 뒤지며 자료를 모으고, 택시를 타고 다니며 직접 취재한 뒤에야 글을 썼던 '발로 쓰는 논객'이었다.

1961년 5·16이 일어난 지 이틀 뒤, 조선일보 편집국장이던 최석채 앞에 공수부대원 둘이 들이닥쳤다. "당신, 왜 혁명 지지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거요?" "공명은 하지만 아직 지지는 할 수 없기 때문이오." 최석채가 거부하자 군인 한 명이 총을 뽑으려 했고 다른 군인이 "야야, 오늘은 그만 가자"며 뜯어말렸다.

군사정권에 밉보인 그는 국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선우휘와 함께 약 1년 동안 사원 명부에 없는 '유령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일부 군인들의 탈선 행동을 경고한다' 등 날카로운 사설을 계속 썼다. 평생 권력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다. 1965년 조선일보 주필 자리에 오른 최석채는 1971년 12월 '국가보위특별조치법을 지지하는 사설을 쓰라'는 정권의 요구를 거부하며 "신문사를 살리려면 내가 나갈 수밖에 없다"며 퇴사했으나 이후에도 계속 조선일보에 칼럼을 썼다.

최석채는 평소 후배 기자들에게 "신문인은 기사 스크랩과 자존심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며 "자존심을 버리면 언론에 대한 사명감도 없어지고 권위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언론인이 쓰는 글은 '발로 뛰어 쓰는 글' '머리로 쓰는 글' '가슴으로 쓰는 글' '오장육부와 폐부에서 우러나 쓰는 글' 네 종류가 있다면서 "국가의 위기 상황에는 폐부에서 치밀어 오르는 끓는 피로 혼신의 힘을 모아 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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