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 테크기업들의 자성… "룰 만들어 달라"

조선일보
입력 2020.06.15 03:00

[Close-up] 안면인식 윤리 논쟁 점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외치는 시위 물결은 앞으로 안면 인식 기술의 방향을 영원히 바꿔버릴지도 모른다(13일 워싱턴포스트)."

"실리콘밸리가 안면 인식 기술을 '독(toxic)'이라고 인정했다(13일 더가디언)."

기술 태동 초기부터 인권침해 우려가 그림자처럼 뒤따랐던 안면(顔面) 인식 기술이 또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말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확산한 가운데, 미국의 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공권력에 안면 인식 기술 제공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난 8일(현지 시각) IBM이 안면 인식 기술 개발 중단을 선언했고,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가 10일과 11일 "안면 인식 기술을 적절하게 규제하는 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정부와 경찰에 관련 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테크 기업의 결정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안면 인식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fueled)"고 보도했다.

◇기술 규제하라는 기술 기업들

IBM의 '안면 인식 기술 포기' 선언을 주도한 것은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신임 CEO(최고경영자)다. 지난 4월 CEO에 취임한 크리슈나는 인도 출신으로, IBM 최초 유색인종 CEO다. 그는 8일 저녁 미국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IBM은 대량 감시, 인종 프로파일링(자료 수집), 기본 인권 및 자유를 침해하는 목적에 안면 인식을 포함한 어떤 기술도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법 집행 기관들이 안면 인식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국가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CNN은 "안면 인식 기술이 IBM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미미하지만, 테크 기업이 기술 개발을 포기한다는 성명은 파격적"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안면 인식 시장 규모 추이 그래프
아마존과 MS는 IBM처럼 기술 개발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큰 규제 없이 성장해온 기술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아마존은 성명을 내고 "앞으로 1년 동안 경찰에 안면 인식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예기간 의회가 적절한 규칙을 수립하고 이행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MS 역시 "안면 인식 기술이 국익, 흑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삶에 반드시 이바지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인권에 근거한 법이 마련되기 전까진 미국 경찰에 기술을 팔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기술을 활용해 시위에 참여한 민간인을 감시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데 기술적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난 여론 역풍 차단 목적도

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안면 인식을 비롯한 인공지능(AI)을 적절하게 규제하는 글로벌 규칙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형성된 지 오래지만, 사업의 운명까지 걸고 적극적 입장 표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결정의 배후에는 여론의 비난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려는 계산도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위대를 향한 과격한 메시지를 던진 트럼프 대통령의 SNS 게시글을 삭제하지 않은 페이스북이 최근 회사 안팎에서 역풍을 맞고 있듯, 기업이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 사업적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미국 안면 인식 스타트업인 클리어뷰AI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진원지인 미네소타주의 경찰에 안면 인식 기술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국 내외에서 법적 소송을 당하는 등 회사가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안면 인식 기술 규제 흐름에 동참하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감시 대국' 中, 기술 주도권 잡나

중국 안면인식 기술 업체 센스타임이 개발한 감시카메라에서 행인의 성별과 옷차림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감지되고 있는 모습.
중국 안면인식 기술 업체 센스타임이 개발한 감시카메라에서 행인의 성별과 옷차림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감지되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

미국 테크 기업들의 안면 인식 기술 개발 포기 선언과 규제 강화 요구에 후발 주자 중국은 내심 기뻐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현재 글로벌 전체 안면 인식 시장 규모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관련 산업이 가장 빠르게 커지는 나라로 꼽힌다. 중국은 서구권과 달리 공권력이 안면 인식 기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도로변 감시카메라에 안면 인식 기능을 탑재해 오가는 행인들 속에서 수년째 탈주 중인 범죄자를 검거하는 사례도 많다. 중국 IT 매체 36커는 "윤리적 문제로 미국의 안면 인식 산업에 제동이 걸렸다"며 "중국의 안면 인식 기업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큰 타격 없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국의 AI 기술 굴기를 막아서기 위해 지난해부터 중국의 대표적 안면 인식 스타트업인 센스타임·메그비·이투테크·아이플라이테크 등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지만, 중국 내수 시장이 받쳐주고 있어 제재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발(發) '인종차별 반대'에 따른 반(反)기술 움직임은 글로벌 단위로 확산하고 있어 중국 역시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안면 인식에 대한 논쟁은 곧 AI 기술 자체가 가진 위험성에 대한 논의로 확산할 것"이라며 "과도한 AI 기술 사용을 규제하는 국제적 규범이 나오게 되면, (중국을 포함해) 이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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