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동물원]생존력 최강의 작은 거인, 족제비

입력 2020.06.06 15:56

쥐잡아먹던 산짐승에서 도시생활에 완벽적응
수달, 담비, 오소리 모두 족제비과 멤버들
벌꿀오소리 VS 울버린 가상대결에도 관심
최근엔 코로나 치료제 개발 특급 도우미로 각광

2주전쯤 늦은 퇴근길. 새벽 1시쯤 인적이 끊긴 서울시청 부근에서 길다란 몸뚱아리를 한 갈색 짐승이 전광석화처럼 내달렸다. 족제비였다. 산과 들을 누비며 쥐와 닭을 잡아먹는 족제비를 서울 사대문 안 한복판에서 만난 것이다. 동물포획 전문가인 이승용 야생생물관리협회서울지회장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사람 눈에 안 띄었다 뿐이지 서울은 족제비 천하”라고 했다.
서울 청계천8가의 수풀에서 포착된 족제비.
/서울시 제공
서울 청계천8가의 수풀에서 포착된 족제비. /서울시 제공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인간세상으로 서식 반경을 넓혔다는 점에서 족제비의 전략은 멧돼지, 길고양보다 한 수위다. 족제비가 대략적으로 몇마리쯤 서식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통계치는 없지만, 소방관과 포획 전문가들은 “요사이 부쩍 늘어난 것만은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청은 내년부터 포획·구조 동물을 작성할 때 개·고양이·그 밖으로 분류했던 것을 보다 세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의 한 공원에서 포착된 족제비가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의 한 공원에서 포착된 족제비가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산짐승이던 족제비가 어떻게 도시까지 터전을 넓힌 것일까. ‘식성을 도시생활에 맞게 바꾼 게 주효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족제비 캐릭터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악당 ‘애꾸눈’이다. 제 새끼들 먹이려 주인공인 암탉 잎싹을 잡아먹는 비정한 암컷 족제비. 그러나 스크린 바깥의 족제비는 ‘피와 살’이 아니고도 먹을게 많다. 사람이 먹다남긴 음식 쓰레기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특히 ‘비린내가 나는 과자’에 열광한다. 그래서 족제비를 잡기위한 포획틀 미끼로 가장 선호되는 것이 새우깡이다.

도시의 족제비는 건물의 갈라진 틈새, 컨테이너 박스 아래쪽 공간 등 상상할 수 없는 곳까지 주거지로 삼고 철저히 인적 끊기는 시간을 이용해 활동한다. 한 배에 최대 7마리까지 낳을 정도로 번식력도 쥐 못지 않다. 그렇게 부쩍 숫자가 늘어나니 사람 눈에 띄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발견·포획신고가 부쩍 늘어났다.
멸종위기종 수달. 최근 서울 한강에서 발견될 정도로 서식지가 넓어지는 추세다.
/한국수달연구센터 제공
멸종위기종 수달. 최근 서울 한강에서 발견될 정도로 서식지가 넓어지는 추세다. /한국수달연구센터 제공

족제비 포획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담당자들이 각오해야 하는 게 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이 아니라 ‘냄새’다. 항문근처에 있는 냄새샘으로부터 여느 동물보다 훨씬 고약한 체취를 뿜어내는게 족제비과 짐승들의 특징이다. 이 냄새는 자신을 노리는 몸집 큰 맹수들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을 확 떨어뜨려주는 무기다. 무서워서 피하는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냄새’를 무기삼아 어떤 환경에서든 탁월하게 적응하는 것은 족제비가(家)의 오랜 내력이다. 그건 집안 가계도를 봐도 알 수 있다. 강, 바다 위, 아프리카 사바나, 북극권 툰드라까지 변화무쌍한 기후에 맞게 진화하면서 각자 동네의 터줏대감이 됐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나와 강가에 터전을 잡고 수상 생태계의 최상위권 포식자가 된 ‘물족제비’가 수달, 나무가 울창한 삼림생활에 맞게 덩치를 키운 ‘산족제비’가 담비다. 오동통한 몸집 때문에 다소 굼뜬듯하지만, 산새와 들쥐, 지렁이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오소리 역시 이 집안 멤버다.
/Tracie Hall/Flickr
미국 LA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자이언트 수달. 한국수달보다 몸길이가 최대 3배에 이른다.
/Tracie Hall/Flickr 미국 LA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자이언트 수달. 한국수달보다 몸길이가 최대 3배에 이른다.

시야를 국경 밖으로 넓히면 족제비 집안의 면모는 한결 변화무쌍해진다. 사계절 뚜렷하고 온화한 기후에 사는 한반도 족제비가 멤버들이 ‘얌전한 샌님’이라면, 극한의 기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친척은 ‘짐승’ 그 자체다. 남미 대륙에는 몸길이가 2m에 육박하는 자이언트 수달이 산다. 주로 민물고기를 잡아먹는 한국 수달보다 몸집이 세 배나 큰 자이언트 수달이 무리를 지어 카이만(남미악어)을 코너로 몰아 짓눌러서 익사시키는 모습에서 평소에 수달에 대해 갖고 있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는 없다.
Derek Keats/Flickr 
남아프리카의 한 자연공원에서 벌꿀오소리가 입으로 새끼를 물어나르고 있다.
Derek Keats/Flickr 남아프리카의 한 자연공원에서 벌꿀오소리가 입으로 새끼를 물어나르고 있다.

자이언트 수달을 압도하는 전투력과 먹성으로 사실상 ‘맹수’로 취급받는 족제비과 멤버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일대에 산다. ‘라텔’이라고도 불리는 벌꿀오소리다. 왕성한 먹성과 거친 성질 때문에 ‘족제비과의 깡패’ ‘초원의 난봉꾼’으로도 불릴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 ‘벌꿀오소리’라는 이름은 벌집을 습격한 뒤 꿀을 빨아먹는 식습관 때문에 붙었지만, 벌꿀은 그저 입가심거리다. 작은 짐승과 새, 파충류등을 직접 사냥하는 것은 기본, 다른 짐승의 보금자리를 덮친 뒤 부모들을 위협해 내쫓고, 그 자리에서 연약한 살결의 새끼들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두꺼운 피부는 벌침은 물론 뱀독도 거뜬히 견디게 해준다. 독사에게 물어뜯기고도 대가리부터 잘근잘근 씹어먹다가 맹독에 중독된 듯 몸부림치며 기절했다가 얼마 뒤 유유히 일어나서 남은 몸뚱아리를 먹어치울 정도로 먹성과 생존력이 강하다.
/Susanne Nilsson/Flickr
왕성한 먹성과 날카로운 이빨 때문에 '북방의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울버린.
/Susanne Nilsson/Flickr 왕성한 먹성과 날카로운 이빨 때문에 '북방의 하이에나'라고 불리는 울버린.

이런 벌꿀오소리를 이견없이 ‘최강 족제비’로 꼽는 걸 주저하게 만드는 맞수가 있다. 휴 잭맨이 나온 영화 시리즈 ‘엑스맨’ 캐릭터로 친숙한 그 이름, 울버린이다. 북극과 맞닿은 북미대륙과 유라시아 북부에 걸쳐 사는 울버린의 별칭이 ‘북방의 하이에나’다. 몸길이는 1m가 넘고 어깨높이는 50㎝에 달하는 ‘헤비급’ 덩치다. 하이에나처럼 강력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로 산 것 죽은 것 가리지 않고 덤벼들어 고기와 가죽은 물론 뼈까지 씹어 먹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사슴인 말코손바닥사슴까지 거뜬히 사냥한다. 덩치만큼이나 냄새도 동급 최강이어서, 불곰이나 늑대 같은 북미의 맹수들마저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에 넌더리를 내며 도망간다.

그래서 맹수 애호가들 사이에선 벌꿀오소리와 울버린의 싸움이 ‘꿈의 대결’로 이야기된다. 북극 가까이 사는 울버린과 사하라 사막 등 더운 남반구에 주로 서식하는 벌꿀오소리가 만날 가능성은 제로라서 ‘꿈의 대결’로 불린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벌꿀오소리가 결국은 지구전 속에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 우선 덩치로 압도하는 울버린이 선공을 잘 날리면 의외로 쉽게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반론이 엇갈린다. 두 종을 혼합시킬 경우 우주 최강의 족제비과 괴수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실제로 시도나 성공됐다는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TheAnimalDay.org/Flickr
밍크농장에서 가죽을 얻기 위해 우리에 갇혀 살고 있는 밍크들.
TheAnimalDay.org/Flickr 밍크농장에서 가죽을 얻기 위해 우리에 갇혀 살고 있는 밍크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어떤 동물이건 길들여 용도에 맞게 활용하기 때문이다. 족제비도 예외는 아니다. 길들임 용도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다. 여느 족제비보다 유난히 부드럽고 따뜻한 털을 가진 밍크는 일찌감치 미국과 유럽 등에서 옷이나 목도리의 재료로 사육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 페럿 훈련 안내서. 족제비과인 페럿은 인간에 의해 반려동물, 또는 실험용으로 길들여졌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반려동물 페럿 훈련 안내서. 족제비과인 페럿은 인간에 의해 반려동물, 또는 실험용으로 길들여졌다.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밍크농장의 좁은 우리안에 갇혀 가죽이 벗겨지며 생을 마감할 날을 기다리는 모습은 닭장에 갇힌 닭, 도살장으로 향하는은 돼지와 다를바 없다. 밍크보다 그나마 팔자가 좋은 녀석이 몸집을 줄이고 반려·실험동물로 개량한 페럿이다. 이 녀석들 팔자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중성화 수술 등을 해도 여느 동물보다 냄새가 고약한 편이라 기르던 도중 버려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수의사 윤신근 박사는 “개나 고양이등과 비교했을 때 어떤 특성이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그래도 기르고 싶다는 의지가 있을 때 입양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이 페럿이 요즘 코로나 문제를 해결할 특급 도우미로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내 유명 제약사들이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페럿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의미있는 치료 효과가 나왔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 개발이 완료된 게 아니라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어쨌든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소식이다.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져 ‘냄새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족제비가(家)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좋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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