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맘…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어"

조선일보
입력 2020.05.30 03:00 | 수정 2020.05.30 11:26

[아무튼, 주말]
만혼·비혼 늘면서 증가하는 난자동결시술

결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아기는 갖고 싶은 39세 직장인 장하리(장나라). 그는 병원에서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으면서 자연 임신을 할 수 있는 확률이 7%란 얘기를 듣는다. 의사는 "난소 나이가 많아 난자의 질이 떨어진다"며 난자 동결 보관도 힘들다고 말한다. 자궁내막증 수술 전 꼭 임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장하리는 정자 매매까지 시도하다가 오히려 사기만 당한다. 결국 그는 아는 남자에게서 정자를 기증받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는 비혼(非婚·자발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 여성 장하리가 결혼 단계를 건너뛰고 아기를 가지려고 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오 마이 베이비'의 노선재 작가는 "서른일곱 즈음에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만 낳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여기에 공감하는 여성이 많았다"며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아이의 행복의 관점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 받아 출산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남편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이 여전히 있는데도 장하리와 같은 생각을 갖는 여성은 생겨나고 있다. 장하리는 과연 자신이 찍은 아빠 후보에게 정자를 받아 임신을 시도할 수 있을까? '남편 없이 엄마가 되는 법'을 현실적으로 들여다봤다.

30대 미혼녀 10% '결혼 안 하고 아이만'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한 결과 30대 미혼 여성 389명 중 '결혼한 뒤 자녀를 갖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세 명 중 한 명(34.2%) 정도였다. 열 명 중 한 명(10.3%)이 '결혼하지 않고 자녀만 갖고 싶다'고 했으며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를 갖고 싶다'고 한 응답 비율도 7.5%이다. 후자는 결혼하고 싶긴 하지만, 못 하게 될 경우에라도 아이는 갖고 싶단 의미다. 출산을 결혼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비율이 17.8%가 된다는 것이다. '(자녀 계획) 아직 모르겠다'고 한 응답자도 절반(48.1%)에 달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김지현(36)씨는 최근 혼자서 아이를 가질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그는 남편의 외도, 시댁과 치른 갈등 때문에 3년 전 이혼한 뒤 "다시는 결혼하거나 남자와 함께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그가 인생에서 한 번도 아이 생각을 빼놓은 적이 없다는 것. 김씨는 "남편이 바람 피운 걸 알고도 얼마간 참았던 것은 아이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 생각은 없어졌지만 아이 생각은 여전하다. 부모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시도해보고 싶다"고 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도 아이를 한 부모 아래서 키우는 게 맞느냐"고 묻자 그는 "결혼한 남녀 사이에서 태어나도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없느니만 못한 부모보단 제대로 된 한 부모가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는 여성을 '미혼모'나 '싱글맘'이라고 불러왔다. 비혼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아이를 갖는 여성을 '비혼모'라고 칭한다. 영어권에서는 비혼모를 'single mother by choice(자발적 싱글맘)'를 줄여 '초이스 맘'이라고도 부른다. 2007년 SBS 드라마 '불량 커플'에서 결혼은 싫고 아이만 갖고 싶은 여자가 등장했을 때는 '미스 맘'이란 말을 썼다. 같은 해 방송인 허수경씨가 두 번 이혼 끝에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기를 낳았다. 당시에는 비혼모 개념이 낯선 데다가 유명인이 이를 당당하게 밝혀서 화제가 됐다. 2016년 허씨는 방송에 나와 "방송에서 아무리 나를 인정해 줘도, 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자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인데, '제일 가치 있는 일을 못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아팠다"고 비혼모가 된 이유를 밝혔다.

차병원에서 난자 동결 시술·보관을 하는 ‘37난자은행’. 차병원
차병원에서 난자 동결 시술·보관을 하는 ‘37난자은행’. / 차병원
10여 년 전 허수경씨가 비혼모가 된다는 소식을 전한 기사에 "돈이 있으니까 가능한 게 아니냐"는 댓글이 있었다. 실제로 혼자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여성 중 사회생활을 충분히 한 데다 경제적 기반도 갖춘 경우가 많다. 의사인 정윤진(39·가명)씨는 "결혼을 일부러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혼자 사는 게 편해서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들어서야 아이를 갖고 싶단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독립적 성향이 강한 데다 생활 기반도 잡혀서 혼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다. "돈과 의지가 있는데 왜 당장 아이를 갖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했다.

결혼? 언제 할지 모르는데 난자라도 얼려놔야

박민정(32)씨는 지난 1월 병원을 방문해 냉동 난자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회사에 여자 동료가 많은 편인데 결혼한 사람은 드물다. 마흔 살에 결혼해서 어렵게 아기를 가진 선배를 보고 박씨와 또래 여자 동료들은 "난자라도 얼려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는 "결혼을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모르지만,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다. 10년 뒤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틸리언 프로를 통한 설문 조사 결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응답한 20대, 30대 미혼 여성은 각각 33.9%, 27.2%였다. 나머지는 '하고 싶지 않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녀를 갖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가 47.4%, 30대가 51.9%였다. 즉, 결혼보다 자녀에 대한 선호가 더 크단 얘기다. 결혼 나이가 늦어지는 데다가 결혼을 하고자 하는 여성도 줄어들면서 자연 임신이 아닌 대안을 찾고자 하는 여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대안 중 지난 5년 새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동결 보존 난자(냉동 난자)이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동결 보존 난자는 2014년 6851개에서 2018년 2만2614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난자를 채취, 냉동 보관해주는 차병원에선 미혼 여성의 난자 동결 시술을 2000년 한 건만 했다가 지난해 493건을 했다. 한세열 일산차병원 난임센터 교수에 따르면 난자를 냉동하려는 여성은 대부분 미혼이다. 기혼은 배아를 냉동하는 더 안정적 방법이 있기 때문에 굳이 난자를 냉동하지 않아도 된다. 한 교수는 "냉동한 난자의 보관 기간은 무한하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보관한 난자를 다시 찾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몇 년에 한 번씩 보관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건강한 난자를 냉동할 수 있는 나이는 평균 만 37세까지다. 차병원의 냉동 난자 보관소 이름도 '37난자은행'이다.

지난해 냉동 난자 시술을 한 서태경(36)씨는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선뜻 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생리 때 과배란 주사를 일주일 정도 맞았는데, 이 기간에 호르몬 때문에 감정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난자를 채취하는 시술은 수면 마취를 하고 이뤄졌다. 서씨는 "비용을 300만원 정도 예상했는데, 검사비와 약값 등을 다 포함해서 그보다 더 많이 썼다. 부부는 보험 혜택을 받아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낸다고 들었다. 냉동 난자 시술을 많이 하는 미혼에게 왜 혜택이 없는지 모르겠다. 저출산이 문제라면서 왜 나중에라도 애를 낳겠다는 사람을 지원하지 않느냐"고 했다.

난자를 얼려놨다고 해서 원하는 때에 임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신하려면 정자가 필요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성관계 없이 정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는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받는 것을 막을 법은 없지만, 보조생식술학회의 지침에 따르면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와 배우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차병원 측도 "법적 부부에게만 임신이 가능한 시술을 해주고 있다. 사실혼 관계는 입증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일부 주와 영국,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미혼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 하원은 43세 이하의 레즈비언 커플과 미혼 여성에게 IVF(체외수정), 정자 기증, 인공수정과 같은 보조 생식술을 통해 임신을 허용하는 내용의 생명윤리법 초안을 통과시켰다. 한세열 교수는 "외국에서 정자를 구해 오겠다는 미혼 여성도 있었지만, 병원 측에서 체외수정 시술을 해줄 수 없다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드라마 속 장하리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정자를 사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남성 지인을 통해서 정자를 공여받으려고 한 것도 다 이런 것 때문이다. 병원에서 체외 임신 시술을 받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그는 정자를 제공할 남자를 찾더라도 성관계를 가져서 임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민정(38)씨는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혼자 아이를 낳는 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있다.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는다면 난 어떻게든 아이를 갖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음 달 냉동 난자 시술을 앞두고 있다.

남자 혼자 아이 키우긴 하늘의 별따기?
2018년, 미혼父의 아이 9066명


결혼하지 않고 혼자 딸을 키우는 연예인 김승현(왼쪽). KBS2 ‘살림남2’ 캡처
결혼하지 않고 혼자 딸을 키우는 연예인 김승현(왼쪽). / KBS2 ‘살림남2’ 캡처

미혼 남성도 아이를 갖기 원할까? 틸리언 프로를 통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30대 미혼 남성 응답자 157명 중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를 갖고 싶다'고 한 응답률이 14.6%로 이는 여성 응답자 비율의 두 배에 달한다. 결혼을 안 하고 자녀를 갖고 싶다고 한 응답 비율도 8.9%이다. 이들 역시 결혼을 하지 않고서 아이를 갖기는 녹록지 않다.

우선, 냉동 난자가 있다면 냉동 정자도 있다. 일산차병원 한세열 교수는 "미혼 여성이 냉동 난자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이 떨어지는 데다가 폐경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정자도 나이에 따라 질이 떨어지고 개수도 줄지만 그 변화가 여성에 비해 완만하다. 정자를 냉동 저장하려는 미혼 남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미혼 남성의 경우 암치료 중 정자 생성 능력을 아예 잃어버릴까 봐 암치료 전 정자를 냉동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래 나이가 들어서 생식 능력을 가졌거나 냉동 정자가 있다고 해도 난자나 대리모를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난임 부부를 위한 정자 기증은 꾸준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난자 기증은 그에 비해 훨씬 적다. 한 교수에 따르면 난임 부부를 위한 난자 기증은 주로 자매 사이에서 이뤄진다. 가족 중 자원자가 없는 이상 난자를 기증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만약 여자와의 성관계를 통해 낳은 아기를 남자 혼자 키우려면 어떨까? 일단 비혼부는 출생신고부터 하기가 어렵다.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제46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친부가 아이 출생신고를 하려면 친모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미혼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를 내야 한다. 2015년 11월 19일 시행된 사랑이법(친모 없이 딸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하려는 친부의 1인 시위를 계기로 입법, '사랑이'는 가명)은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아버지 혼자서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마저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2016년 동부지법에선 어머니 인적 사항 셋 중 하나라도 알면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지만 2019년 대전가정법원은 셋 중 일부를 알더라도 어머니를 특정할 수 없다면 적용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인구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8년 현재 미혼의 생부가 양육하고 있는 자녀는 9066명, 미혼의 생모가 양육하고 있는 자녀의 수는 2만496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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