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줄타기하며 성장한 TSMC...미중 갈등 핵심으로

입력 2020.05.25 18:30 | 수정 2020.05.25 18:32

미중 한 쪽에 서지 않으며 성장해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슬로건
반도체 기술 패권에 휩싸이며 외풍

대만에 있는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내부 모습. 미국과 중국 사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사업을 키워오던 TSMC가 미·중 갈등의 ‘새로운 핵’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TSMC를 자국 영향력 아래에 놓으려 한다. /TSMC
대만에 있는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내부 모습. 미국과 중국 사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사업을 키워오던 TSMC가 미·중 갈등의 ‘새로운 핵’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TSMC를 자국 영향력 아래에 놓으려 한다. /TSMC

미·중 갈등이 다시 달아오르면서 최근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반도체 기업이 있다. 대만의 TSMC다.

이 회사는 애플·퀄컴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이 없는 팹리스(fabless) 회사의 주문을 받아 설계도대로 반도체를 대신 만들어주는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기업이다. TSMC는 삼성전자(15.9%)도 넘보지 못하는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4.1%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다.

이 회사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펜스시터(Fence sitter·경계선에 있는 업체)’로 불렸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에 서지 않으며 양 국가의 고객을 유치해 사업을 키워 왔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하며 TSMC는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킹핀(Kingpin·핵심 기업)’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가 어떤 기업이기에 테크 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우군(友軍)으로 삼으려는 걸까.
/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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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사업 모델의 원조

TSMC는 대만의 대표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43조8000억원, 영업이익은 15조1000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34.8%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매출보다 20조원 정도 적지만, 영업이익은 1조원가량 많다.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보다 13%포인트 높다.

TSMC는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전(前) 회장이 56세인 1987년 설립했다.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난 모리스 창 전 회장은 2차 세계대전 중에 광저우와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버드대학에 입학했고 MIT로 편입한 그는 졸업 후 미국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창 전 회장은 대만 정부로부터 대만산업기술연구원 원장직을 제안받고 1985년 금의환향한다. 당시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그는 대만 반도체 산업이 성공하려면 반도체 설계나 마케팅을 통한 직접 판매가 아닌 새로운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때 나온 것이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이다. 고객사의 반도체 설계도대로 생산만 해주는 이러한 사업 방식은 그전에 없던 것이다.

◇파운드리로 반도체업 핵심을 차지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갖고 있다. 당시 반도체를 설계해 대기업에 위탁 생산을 의뢰한 소규모 업체들은, 반도체 대기업의 기술 빼내기에 당하거나 기술 이전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TSMC는 달랐다. 기업의 크기에 상관없이 원하는 설계도대로 반도체를 만들어줬고, 기술을 달라는 요구도 절대로 하지 않았다. 덕분에 글로벌IT회사인 엔비디아·브로드컴·퀄컴 등의 신뢰를 얻어 오랜 기간 사업 파트너로 지냈다.

TSMC는 매년 10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을 설비 투자와 R&D에 쏟는다. 올해도 150억달러를 투자한다. TSMC는 2018년 하반기에 7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반도체를 양산했고, 지난달부터는 5나노 공정으로 애플의 아이폰12에 탑재될 모바일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보다 반년 정도 앞선 것이다.

TSMC는 뛰어난 기술력과 막대한 투자, 30년간 이어온 고객사 관계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올 1분기 TSMC는 시장 점유율 54.1%를 차지하며 2위인 삼성전자(15.9%)와의 격차를 갈수록 벌리고 있다. 기술력으로만 보면 삼성전자가 TSMC와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고객을 확보하고 실제 양산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TSMC가 훨씬 앞선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미·중 갈등의 핵으로

작년 기준 TSMC의 고객은 애플·퀄컴·화웨이 등 499사다. 만든 반도체 종류는 1만761개다. TSMC가 사업을 키운 바탕에는 정치색이 없었다는 점도 있다. TSMC 고객사의 59.3%는 미국, 19.4%는 중국 업체다. 그동안 TSMC는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주문 물량을 공급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반도체 자립을 외치는 미국의 압박이 거세자 TSMC는 지난 15일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5나노미터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미국에 굴복한 것으로 반도체 업계는 해석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TSMC는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세계 파운드리 업체 중 7나노 이하 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한 곳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특히 TSMC의 작년 매출 중 14%는 화웨이에서 나왔다.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은 TSMC가 화웨이 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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