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어거스트 디, 방탄소년단 슈가·민윤기 고뇌 토하다

  • 뉴시스
입력 2020.05.23 12:18


                슈가 믹스테이프 'D-2'
슈가 믹스테이프 'D-2'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 징을 한번 울려 '대취타(大吹打)'를 시작하라는 명령에 "예이~"라고 악대가 화답한다.

임금의 거둥과 조선시대 군례(軍禮)에 연주되던 일종의 행진음악 대취타가 시작되면 그룹 '방탄소년단'(BTS) 슈가(27·민윤기)의 세계가 아닌 '어거스트 디(Agust D)'의 세상이 펼쳐진다.

민윤기의 또 다른 음악적 정체성인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은 예전에 가사에 썼던 'DT 슈가(Suga)'를 거꾸로 배열한 것이다. DT는 슈가의 고향인 대구, 즉 디 타운(D Town)을 가리킨다.

그 만큼 자기 내면에 골몰할 수 있어 '자기 고백적'이다. 일곱 명이 함께 하는 방탄소년단 멤버로서 드러내지 못한 고뇌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미 4년 전 어거스트 디라는 이름으로 자기 고백적인 첫 믹스테이프를 선보였던 슈가는 22일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를 발매했다. 이번에는 특히 글로벌 슈퍼스타로서 성공한 이면의 혼란과 고민 방황에 대해 다룬다.

그래서 타이틀곡 '대취타'에서 '광해'를 모티브로 삼은 것은 탁월했다. 슈가는 이 곡에서 "종놈 출신에 왕 된 놈 미쳐버린 광해 플로(Flow) 개천 출신에 용 된 몸 그게 내가 사는 법 미안 걱정은 말라고 나도 잃을 건 많다고 과건 뒤주에 가두고"라고 노래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병헌 주연의 팩션 사극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 광해의 분신 발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혼란으로 생명에 위협을 느낀 광해군이 신하에게 자신과 닮은 인물을 찾아오라고 명령을 하고, 결국 자신과 닮은 광대를 대리자로 내세운다는 상상력이 이미 퍼져 있다.

슈가가 직접 등장해 1인2역을 연기하는 4분28초가량의 '대취타' 뮤직비디오에서는 왕과 잠시 그 대리자로 살았던 이들의 갈등이 압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칼로 일으키려는 반란을 총으로 제압하는 마지막 장면이 강렬하다.

자신과 닮을 이를 끊임없이 없애면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증명받아야 하는 힘겨운 세상살이. 그건 기존의 자신을 없애면서 스스로 발전을 해야 하는 예술가와 닮았다.

'대취타'를 샘플링해 만든 어거스트 디의 '대취타'는 꽹과리, 태평소를 비롯 한국 고유의 전통 악기들과 세련되게 어우러진 트랩 비트(Trap Beat)가 묵직하다. 자연스런 동서양의 조화가 일품이다. 무령지곡이라고도 불리는 '대취타'는 선조의 기개를 느끼게 하는, 기운차고 장엄한 곡인데 어거스티 디는 힙합 장르로 이런 기운을 옮겨온다.

'대취타'를 비롯 앨범에는 10곡이 실렸는데 장르는 다양하지만, 내용은 유기적이다. 슈가, 아니 민윤기로서 느끼는 고뇌를 어거스티 디로서 솔직하게 쏟아낸다. 1번 트랙부터 10번 트랙까지 순서대로 듣다보면 귀로 한편의 중단편 영화(앨범의 러닝 타임은 32분가량)를 본 듯하다.

10곡 중 5곡에 '19세 미만 청취불가' 딱지가 붙었는데 노골적이라기보다 속 시원해서다. 믹스테이프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는 음반으로, 그 만큼 더 자유롭게 생각을 담을 수 있다.

"시작은 초라했지 대구 그래 남산동 지하에서 이제는 펜트하우스 한남 더 필"이라고 노래하는 올드스쿨 리듬의 붐뱁 장르인 첫 트랙 '저 달'(Moonlight)부터 자신이 걸어온 길, 겪어왔던 상황들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타이틀곡 '대취타'를 거쳐 당도한 3번 트랙 '어떻게 생각해?'(What do you think)?는 미니멀한 트랩 장르로, 가사마저 공격적이다. 거친 욕도 포함됐는데, "빌보드 일 위 어떻게 생각해. 그 다음은 그래미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던지 난 미안한데 XX X도 관심 없네"라며 그간 방탄소년단에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질문들에 시원하게 맞선다. 특히 "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들 갈 테니까"라는 노랫말은 팬덤 아미(Army)들을 속시원하게 만든다.

슈가와 함께 방탄소년단에서 랩 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 RM이 피처링한 한 4번 트랙 '이상하지 않은가'(Strange)는 어두운 분위기의 트랩(Trap) 힙합 장르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 사회의 이상한 점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양극화 세상에서 가장 추한 꽃"이라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짚는다.

R&B 가수 니화가 피처링한 '점점 어른이 되나 봐'는 영어 부제가 '28'인데 우리나이로 스물여덞살이 된 슈가가 어른이 돼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풀어냈다.

최근 슈가가 동갑내기 아이유와 협업한 아이유의 신곡 '에잇'과 짝을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곡이다. '에잇'에서 아이유와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난 영원히 널 이 기억에서 만나"라고 노래하던 슈가는 '점점 어른이 되나봐'에서 어거스트 디가 돼 "점점 어른이 되나 봐. 기억이 안 나. 내가 바란 것들은 무엇이었나"라고 ?슷떳객?. 영원과 사라짐, 어른이 돼 가는 삶에서 평생 안고가야 할 과제의 짝패다.

싱어송라이터 맥스가 피처링한 '번 잇(Burn It)'은 랩(Trap) 장르의 힙합곡으로 '점점 어른이 되나 봐'의 정서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미련, 후회 등을 태워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되기의 하나다.

7번 째 트랙 '사람'(People)에서는 한결 편해진다. 미니멀한 스틸 드럼(Steel Drum) 사운드와 대중적인 정서를 녹인 트랩 힙합(Trap Hip Hop) 장르로, "상처 받으면 뭐 어때. 그렇게 살면 뭐 어때"라고 노래한다.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가미된 클라우드 랩(Cloud Rap) 장르의 '혼술(Honsool)'은 몽환적인 곡으로 "슈퍼스타가 되면 매일 파티를 하면 사는 줄" 등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냈다.

'인터루드 : 셋 미 프리(Interlude : Set me free)'는 어거스트 디로서 나선 슈가의 새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브릿 록(Brit Rock)과 힙합적인 바이브가 혼재된 팝 록(Pop Rock) 장르의 곡으로 진심 어린 그의 보컬이 귀에 감긴다.

'어땠을까'가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된 것은 절묘했다. 모던 록 밴드 '넬(NELL)'의 보컬 김종완이 피처링한 곡으로 모던 록과 힙합이 하이브리드됐다. 어쿠스틱한 편곡과 감성적인 보컬로 전해주는 어거스트 디의 이야기에 피아노 루프가 더해져 서정적이다. 점점 현악 편성과 기타 사운드가 점층법처럼 감정을 확장시킨다.

"대구로 함께 놀러갔었던 우리 시간과 수많은 날 둘이면 세상도 무섭지 않아"라고 추억하며 그리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내는 랩이 여운을 남긴다.

슈가 아니 어거스티 디 아니 민윤기의 개인적 삶에 대한 노래일 수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삶은 "어땠을까"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왜 슈가가 부캐릭터인 어거스트 디를 꺼내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지 깨닫게 됐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페르소나(가면)를 만들고 그것이 자신인 마냥 산다. 가끔은 다른 내가 돼 진짜 나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슈가의 어거스티 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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