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법정이 영화관 된 까닭은

입력 2020.05.23 16:49

재심 공판 첫날 법정에서 영화 튼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 "영화 속 백광호와 현실 윤씨와 비슷"

지난 19일 오전 11시 수원지법에서 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3)씨에 대한 첫 재심 공판이 열렸다. 언론사 20여곳에서 몰려들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판사는 먼저 검찰 쪽 의견을 약 20분간 들은 뒤 변호인을 향해 “다음 윤씨 측 입장 말해달라”고 물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준비해 온 ‘재판의 주요쟁점’ 제목의 PPT를 법정에 공개했다. 그러면서 “윤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이유 12가지를 약 30분간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변론 도중 영화 ‘살인의 추억’을 함께 보자고 제안했다. 박 변호사가 직접 장면 몇 개를 짜깁기해 총 7분 분량의 영상 3개를 보여줬다. 영화 속 인물 ‘백광호’와 실제 윤 씨와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법정 안 대형 모니터의 음향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꼭 보고 가야 한다”며 변론까지 잠시 중단한 뒤 한참을 손보기까지 했다. 박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영화 속 백광호는 지적 장애가 있지만, 현실의 윤씨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면서도 “일종의 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해당 사건을 쉬운 이해로 돕고자 백광호와 비유했다”고 말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이번 재심 사건인 8차 사건 이외 다른 사건을 다뤘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배우 송강호가 역할을 맡은 경찰이 백광호를 범인으로 몰아갔듯 실제 경찰도 윤씨를 몰아세웠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법정에서 3가지 장면을 예로 들었다.

① 잘 걷지도 못하는데 담을 넘는다?

“야 거기서 봐… 너 손가락이 붙어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하겠다. 그렇지? 너 어릴 때부터 이런 거지?”
“백광호 쟤 범인 아니라니까요. 죽은 여자 몸에 끈 같은 걸로 세 번이나 꽁꽁 묶어 매듭을 만들었잖아요. 백광호 손을 봐봐요. 저 손으로 가능합니까?”

형사 서태윤이 현장 검증 떠나는 백광호를 붙잡고 화상 입은 손을 살펴보고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형사 서태윤이 현장 검증 떠나는 백광호를 붙잡고 화상 입은 손을 살펴보고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서울에서 온 형사 서태윤(배우 김상경)이 현장 검증에 나선 백광호(배우 박노식)와 수사본부 상급자에게 각각 한 말이다. 서 형사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백광호가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범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현실의 윤씨는 젊었을 적부터 왼발을 심하게 저는 등 다리 장애가 있다. 백광호가 손으로 매듭을 제대로 못 묶듯 윤씨가 8차 사건 범행을 저지르고자 담벼락을 넘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법정에서 판사와 방청객을 향해 “영화 속 서 형사가 한명이라도 1989년에 있었다면 지금의 윤씨가 억울한 옥살이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②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다?

“(사진을 보여주며) 작년에 이향숙 죽었을 때 사건 현장에서 찍었던 발자국 사진이야. 그리고 이거는 니가 신고 다니는 운동화, 사진과 똑같다 그렇지?”

형사 박두만이 조작한 증거들을 백광호에게 보여주고 있다./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형사 박두만이 조작한 증거들을 백광호에게 보여주고 있다./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화성 경찰서 형사 박두만(배우 송강호)이 백광호 조사 과정에서 한 말이다. 박두만은 조사에 앞서 백광호 집에서 신발을 몰래 가져다 사건 현장에 찾은 뒤 발자국을 일부러 새겼다. 이를 준비해 온 사진으로 찍고 ‘현장에서 발견된 사진’이라며 조작이 사실이라 주장한 것이다. 변호인 측은 현실의 윤씨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조작 정황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8차 사건은 발생 당시 경찰이 윤씨를 조사했고 10개월 후 재조사했다. 첫 수사 당시 피해자 아버지는 방안에서 희미한 운동화 자국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10개월 후 아버지 진술이 운동화에서 맨발로 바뀌었다. 박 변호사는 “8차 사건 발생 당시 운동화 자국이 선명하지 않아 감정 불능이라는 결과를 내놨다”면서 “하지만 나중에 경찰이 피해자 아버지의 진술이 ‘맨발자국으로 기억난다’는 등 진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③범인을 윤씨로 정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현장검증에 나선 논두렁에서)강호야 위치 여기 맞지? 몰라? 이 자식이 딴소리하고 있어…여기 맞잖아 인마”
“좋아, 여자들은 니가 다 죽인 건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이향숙만은 네가 안 죽인 게 아니다?”
“나야 모르지” “(백광호를 발로 세게 차며)이 새끼가 잘 나가다가…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했어! 개XX야”

형사들이 백광호의 살인 자백을 이끌어 내고자 유도신문을 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형사들이 백광호의 살인 자백을 이끌어 내고자 유도신문을 하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장면

화성 경찰서 형사 박두만(배우 송강호)과 형사 조용구(배우 김뢰하)가 백광호를 윽박지르며 한 말들이다. 화성 경찰서 소속 형사들은 백광호를 범인으로 단정했다. 이 과정에서 욕하며 때리고 속옷만 입힌 채 조사를 받게 했다. 현실의 윤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검찰은 작년 말 8차 사건 당시 수사관이던 형사 3명을 조사했는데 윤씨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한 진술을 확보했다. 가혹행위를 보면 윤씨를 주먹이나 발로 때리거나 쪼그려뛰기를 시키는 등이다. 특히 윤씨는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해 글씨가 서툴고 맞춤법을 잘 모른다. 이 때문에 경찰의 강압 수사에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 수 없었다는 것이 변호인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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