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해도 생산성 하락 1%뿐… 직원들 지옥철 해방, 서로 못만나니 창의성은 떨어져… 종일 PC 앞도 못떠나

입력 2020.05.23 03:25

[오늘의 세상]
- '뉴노멀' 재택근무 明과 暗
기업, 사옥에 큰돈 안써도 되고 해외사무실 없이 현지 인력 채용
잡담하다 아이디어 얻을 기회 없어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인사 평가

"포스트 코로나 세상의 사무실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미 ABC뉴스는 지난 8일(현지 시각) 코로나 사태가 근무 형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도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3~4개월 만에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본래 재택근무는 일부 IT(정보기술) 기업이 활용해 온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사람들이 만나고, 소비하고, 생산하는 모든 삶의 모습을 바꿨고, 거의 모든 기업이 재택근무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한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로 팀원들과 화상회의를 하며 근무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한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로 팀원들과 화상회의를 하며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택근무를 확대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트위터다. 이 회사는 3~4년 전부터 자율 출근제로, 모든 직원이 주(週)에 하루 이틀 집에서 일했다. 트위터코리아의 신희정 상무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전원 재택근무의 좋은 실험 기회로 여겼다"며 "사무실 없이 운영이 가능한지 2개월간 전 부서가 점검했다"고 말했다. 트위터 창업자인 잭 도시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12일 직원들에게 "영원히 재택근무 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무기한(無期限) 재택근무를 시작한 세계 첫 기업이 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가 촉발한 엄청난 변화 속도를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변화가 이 정도였지 않을까 상상이 된다"고 말했다.

明: 부동산비 아껴 인재 투자

재택근무의 바람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21일 "10년 내 모든 직원의 50%가 원격 근무를 할 것"이라며 "초기에는 고위 엔지니어들에게 원격 근무를 적용하고 점차 확대한다"고 밝혔다. 구글과 MS·아마존 등도 올 하반기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한 상태다. 캐나다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는 직원 5000여 명에게 무기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알렸다.

그 바람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SK그룹은 '스마트 워크'를 도입했다.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여러 곳에 마련한 사무 공간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들러 일하는 방식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부서나 업무 특성에 맞춰 여러 형태의 재택근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확산 배경엔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 미국의 생산성 전문 조사 업체인 발루아(Valoir)가 지난 4월 재택근무자 327명을 조사하고 2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재택근무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 대비 평균 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거꾸로 본사에서 재택근무자에 대한 업무 통제만 제대로 한다면 생산성이 좋아질 여지도 있다.

재택근무의 주요 장단점
수만 명이 근무할 본사 사옥을 짓느라 수조(兆)원씩 낭비할 필요도 없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도 사무실 없이 유능한 현지 인력만 뽑으면 된다. 이윤 창출만 놓고 보면 재택근무가 기업이 추구하는 최상의 모델일 수 있는 것이다.

직원은 지옥철(만원 출근 지하철)에서 해방되고 출퇴근 시간 낭비에서 벗어난다. 서울시 직장인 수백만 명이 한 시간 안팎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업무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숨겨진 인력 자원의 재발견인 셈이다.

◇暗: 냉혹한 성과 중심주의로 이어져

재택근무가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선 회사 내부망과의 연결, 보안 문제 등 기술적인 난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40대 이하 직원들이 전체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한 금융사는 코로나 확산을 피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초기엔 큰 문제 없이 평상 수준의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이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수백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사내 회의를 개최했더니 전산에 문제가 발생해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는 직원들이 창의성을 무심코 얻는 계기도 없앤다. 사무실에 옹기종기 앉아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눌 기회를 뺏은 것이다. 직원들 간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낳는 불예측적인 창의성이 발생할 여지 자체가 사라졌다. 예컨대 미국 IBM은 1993년 사무실 외 공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했고, 전체 직원 38만명 중 40%가 원격 근무 형태로 일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2017년, 원격·재택근무제를 폐지했다. 창의적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미셸 펠루소 IBM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사무실 근무는 혁신과 창의적 근무 환경을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에도 재택근무에 부정적인 CEO가 많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재택근무 확산과 관련, "회의실에서 옆 사람과 회의 전 2분 정도 잡담하는 걸 놓치고 있다"고 했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자도 "이메일과 인터넷 채팅만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건 미친 소리"라며 "창의성은 즉흥적인 만남과 임의로 이뤄지는 토론에서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재택근무 확대는 냉혹한 성과 중심주의로 이어진다. 직장 상사들은 팀원이나 직원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해당 직원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성과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과 이외에 비(非)정성적인 평가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예컨대 사무실에서 동료와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얘기하는 것은 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집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업무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는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평가의 기준이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이 될 것"이라며 "피평가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일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러한 평가를 통해 불필요한 인력은 빠르게 정리 해고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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